박숙영의 회복적생활교육 이야기

회복적 생활교육, 교사역할론

평화숲 2014. 3. 22. 22:41

2013년 12월호-17

 

회복적 생활교육, 교사역할론

 

 

어둠과 싸우는 대신에, 빛을 가져오기

 

“아이들과의 싸움에서는 밀려서는 안 돼. 아이들과의 기 싸움에서 이겨야 해. 그렇지 않으면, 두고 두고 이 아이에게 휘둘릴 수 있어.”

이 생각은 아이들과 갈등이 분출되어 긴장하고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를 지배해서 아이와 격돌하게 한다. 결국 나는 학생과 처절한 싸움을 시작하고 마침내 승리한다. 하지만, 기쁘지 않다. 행복하지 않다. 물론 잠시 안심은 된다. 하지만, 그 학생과의 관계에서 내가 풀어야 앞으로의 숙제는 더욱 어렵게 된다.

교사는 아이가 공격해오면, 똑같은 방식으로 더 크게 공격한다. 교사의 힘, 어른의 힘, 기득권의 힘으로. 이는 ‘폭력에 대해 더 큰 ‘폭력’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 우리를 더욱 견고한 ‘폭력’프레임 속에 갇히게 한다.

“어둠과 싸우는 대신에, 빛을 가져오라”의 전략이 없다면, 우리는 폭력이라는, 어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다른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다.

 

교사역할론

1. 질문의 변화

“어떻게 학생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교사의 말을 잘 따르게 할 것인가?” → “학생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어떻게 요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가?”

알피 콘에 의하면, 교사의 질문과 관심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보다는 ‘학생들의 요구는 무엇이며, 어떻게 충족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을 어떻게 하면 통제할 수 있는지의 질문은 학생들을 미숙하고 관리․감독이 필요한 존재로 보는 인간에 대한 어두운 관점이라고 말한다. 교사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어두운 관점과 밝은 관점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내면의 빛이 있다는 것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 교사는 배움의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파커 파머는 ‘가르침은 진리의 커뮤니티가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교사는 배움의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교사는 객관적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지성뿐만 아니라 감성, 영성과 관련된 전인격적인 배움이 일어나도록, 교사와 학생 간의 지성과 감성, 영성이 안전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한다.

 

3. 성찰과 경험을 나누는 배움의 방식

“훌륭한 가르침의 핵심은 상호 연결적이다.”, “실재는 공동체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과 상호작용을 할 때 가장 잘 배운다.” 그러나 가르침이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권위적인 교육방식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동적으로 지식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빈 그릇으로 취급하는 ‘은행저금식 교육’으로 생동감있고 자발적인 배움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지금의 교사중심의 지식전달식에서 벗어나서 상호작용적 배움, 관계적 배움, 의사소통을 통한 배움이 되어야 한다. 사실 교사는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동시에 학생들에게 배우게 된다.

 

4. 힘을 공유하는 리더십, 파트너십

회복적 생활교육의 교사 리더십은 힘과 권위에 의존한 ‘응보적․징벌적 리더십’과 구별된다. 또한 학생들에게 휘둘려서 어떠한 지도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허용적 리더십’과도 구별된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교사는 구성원 개인의 자율성이 동등하게 보호되고, 동시에 개인은 진리의 공동체에 순종하는, ‘힘을 공유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능력 있는 교사의 학급은,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이 조용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학급이다. 이제까지의 학급 구조는 대개 교사중심의 지배체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학생들이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학생중심의 지배체제 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교사를 왕따 시키는 경우가 이런 현상을 말해주고 있다. 교사 권위적 태도든, 학생의 교사에 대한 도전이든 간에 모두 힘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힘에 의한 조직이 아니다. 알피 콘은 소수의 압력에 의해 좌우되는 공동체를 거짓공동체로 보고, 이를 ‘집단’으로 구분했다. ‘진정한 공동체는 악전고투에서 발생한다.’, ‘진리의 커뮤니티는 관료적이며 일사불란한 구조는 결코 될 수 없고 다소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구조를 취한다.’ 진정한 공동체는 개인이 소멸되지 않는, 개인과 공동체가 동등하게 존중되고, 힘이 모두에게 공유되는 공동체이다. 교사는 힘에 의해 학생을 통제하기 보다는 학생과 힘을 나누는 협력적 관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

 

5. 갈등을 평화롭게 중재하는 자

많은 교사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이미 서 있어서, 학생 간에 갈등이 발생하면 훈계하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교사의 훈계를 권위적인 태도로 인식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기보다는 변명하거나 저항하려고 한다.

얼마 전, 특성화고 상담샘의 요청으로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학생들을 만났었다. 폭력을 지속적으로 당해온 학생은 117신고를 한 상태이고, 상대 학생들은 117신고를 한 그 학생을 묻어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말로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괴롭혔다는 두 명의 학생과 괴롭힘을 받았다는 한 명의 학생과 마주하여 대화모임을 진행했다. 괴롭혔다는 두 명의 학생들은 이미 학교에서 폭력적이라고 낙인이 된 짱들이었고, 이번 일이 발생하자 그들은 교사와 경찰로부터 “이번 한 번만 더 일이 발생하면 넌 소년원 가야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위기의 학생들이긴 했다. 하지만, 대화모임 속에서 학생들이 가장 억울하고 화나게 된다는 것은 일이 발생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다자고짜 나무라는 선생님들의 태도라고 말했다. 자신들을 선입견으로 바라보고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훈계하는 것이 화가 나서 자신이 더 큰 소리를 지르고 반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진짜 바라는 것은 이렇게 대화하는 거예요. 우리는 말로 하면 잘 들어요.” 대화 내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위협받았다는 친구의 말을 잘 반복해주었다. 그리고, 어느 새 긴장감으로 싸늘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서로 눈을 마주치며 말하고 얼굴표정이 온화해지면서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변해 갔다. 교사가 규칙과 원칙을 강조하다보면, 경찰관과 법관으로 변하기 쉽다. 교사는 끊어진 관계를 안전하고 평화적으로 잇는 역할을 해야 한다. 평화는 갈등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평화는 폭력의 부재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평화는 대결적이고 파괴적인 상호작용을 점 더 협력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로 전환시키는 과정 을 의미한다. 풍부한 잠재력과 다양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하고, 성장과 배움의 기회로 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상대의 폭력에 대해 ‘은총과 사랑의 공간, 변화의 공간 만들기’로 반응하기

“내면적인 변화에 관련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다른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은총과 사랑이 들어 올 수 있는 공간을, 변화를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 뿐입니다.” “누가 너희를 힘들게 하거든, 그를 위해 기도하라, 누가 네 뺨을 치거든, 그 자리에서 맞아라. 누가 네 셔츠를 움켜쥐거든 네 가장 좋은 외투를 벗어 주어라. 똑같이 갚아 주는 것은 이제 그만하라.”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폭력에 투표하는 일이며, 그로인해 우리가 원하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어둠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면 자신도 무지의 어둠에 휩싸이게 된다. 교사는 자신의 반응(무의식적)을 알아차리고, 폭력의 프레임이 아닌 사랑과 평화의 프레임으로 반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