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출 듯 가린다 - 박노해
비출 듯 가린다
박 노 해
어두운 밤 길을
작은 등불 하나 비추며 걷는다
흔들리는 불빛에 넘어져
그만 등불이 꺼져 버렸다
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빛나는
밤하늘 별빛을 보았다
언제부터 내 머리 위에서
찬연히 반짝여온 저 별빛
작은 등불을 끄지 않고는
하늘의 별빛을 볼 수 없다
작은 것은 늘 크고 깊은 것을
비출 듯 가리고 서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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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등불로만으로도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작은 등불에 고마와하며 만족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 등불이 꺼져버렸다. 칠흑같은 어두움 속에서 당황하고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인공빛이 아니라 본래의 빛을 만난다. 칠흑이라서 볼 수 있는 본래의 빛.
"작은 등불을 끄지 않고는" 볼 수 도, 만날수도 없었던 본래의 빛.
작은 등불을 끄지 않고서는......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런 손짓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작은 등불을 꺼야 한다는. 본래의 빛을 보기 위해서....
"자아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고정된 영토가 아니라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는 어떤 능력으로 인식된다."(파커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94쪽)
고정된 내 영토에 머무르려는 나의 안주와 욕심을 만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떠날 차례인 것이다.
떠날 차비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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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나를 자꾸 붙잡는다. 일상 속에서도 불현듯 이 시를 떠오르게 하고 다시 찾아보게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시. '비출 듯 가린다' 제목부터 나의 시선과 영혼을 사로잡는다. '작은 등불을 끄지 않고는 하늘의 별빛을 볼 수 없다.' 시인은 작은 등불을 들고 있다면, 하늘의 별빛을 보기 위해서 꺼야 한다고 말한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하늘의 별빛', 인공적인 빛이 아닌 본래의 빛. 인공적인 빛을 끄라는 거구나. 본래의 빛을 보기 위해서 들고 있는 등불을 끄고, 칠흑의 어둠으로 들어가라 한다. 아... 시인은 영혼의 언어로 영혼에게 말을 건넨다. 짧은 언어와 비유로 우주를 말하는 시인... 인공의 빛에 만족해하지 않는지 돌아보는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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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나에게 있어 '비출 듯 가리는' 작은 등불은 무엇인가?
질문) 인공의 빛이 아닌 '하늘의 별빛'을 보기 위해 꺼야 할 작은 등불은 무엇인가?
질문) '하늘의 별빛'을 위해 만나야 할 칠흑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