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학교폭력해결을 위한 회복적 과정
박숙영의 회복적생활교육 이야기 46
학교폭력해결을 위한 회복적 과정
이 법은 학교폭력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 · 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 1조(목적)
김병지 선수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
올 초 1월에 김병지 선수가 자신의 아들(초2)의 학교폭력논란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병지 선수는 학교폭력처리 불만으로 인해 상대 학부모와 담임, 학교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아이들의 싸움이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된 것이다. 결국 법정에서 초등 2년생인 아이들은 누가 먼저 주먹을 사용했는지, 누가 먼저 공을 던졌는지, 소모적인 공방전을 치러야 한다.
아이들의 싸움이 왜 법정 소송까지 가야 했을까? 학교폭력처리 과정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피해학생의 피해 회복 실패 & 가해학생의 선도 실패 & 분쟁조정 실패
아이들 사이의 학교폭력문제가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된 것은, 피해학생의 피해회복 실패, 가해학생의 선도 실패, 분쟁조정의 실패 결과다. 김병지 선수의 경우에는 피해학생의 치료비를 보상하고, 가해부모가 진심어린 걱정과 사과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틀 뒤에 가해학생은 또다시 실로폰 막대로 상대아이의 머리를 때리는 일이 발생했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도의적인 노력들이 오갔고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당사자인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도의적 노력이나 서로에 대한 이해과정이 없는 채 내면에 분노, 억울함, 불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결국 아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내면의 문제들이 방치되어 언제 어느 때든 폭력적인 일이 재발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하려면 발생한 일들로 인해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의 내면이 다루어져야 하고,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약속이 세워져야 한다. 아이들 문제를 아이들에게 돌려주지 않았고 여전히 어른들 이해관계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당사자들에게 화해와 중재를 위한 회복적 과정이 주어져야 한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아이들의 내면 문제가 다루어져야 하고, 화해와 중재를 위한 회복적 과정을 거쳐야 학교폭력문제가 안전하게 해결될 수 있다.
사례)
동호(고1)는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윤석이(고1)의 바지 아래를 가리키며 “와~ 엄청 크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4명의 남학생들이 과장된 얼굴표정과 함께 “우와~~~”하고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놀기 시작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2주의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놀림이 있어왔다. 윤석이는 친구들의 장난을 처음에는 그냥 웃음으로 넘겼지만, 놀림이 멈추지 않자 불쾌해졌고 수치스럽게 여겨졌다.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목요일 3교시에 음악실로 이동하는 복도에서 또 놀림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윤석이는 바로 학생부에 가서 학교폭력신고를 하고, 진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담임에게 사인을 받으려 찾아왔다. 평소 자기표현을 어려워하던 윤석이가 이렇게 까지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은, 그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늘 입을 다물고 있거나 단답식으로 Yes, No만 하던 그 아이에게 마침 일어날 것이 일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좀 더 길게 얘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윤석이의 마음을 깊이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대화의 막바지에 친구들과 대화모임을 해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했다. 윤석이는 잠시 멈칫하다가 그러겠다고 답했다. 학폭위는 이것과 상관없이 윤석이가 원하는 데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동호를 포함하여 5명의 남학생들을 차례로 만났다. 다섯 명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장난이었다고 답했다. 아이들을 대화모임에 초대했고, 다섯 명의 아이들은 대회모임 참여에 동의했다.
특별실에서 여섯 명의 남학생들과 담임교사 1명, 모두 일곱 명이 둥글게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그 일로 인해 각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질문했다. 먼저 다섯 명의 아이들이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윤석이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윤석이는 입을 달싹거리기만 하고, 한 마디도 입 밖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담임과 대화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는데, 윤석이에게 자기표현이 어려워 보였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왔다. 잠시 윤석이를 기다려 주다가 윤석이에게 학생부에서 썼던 진술서를 읽어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윤석이가 동의해주었고 나는 윤석이를 대신해서 진술서를 읽어 내려갔다. 다 읽은 뒤에 상대 아이들에게 무엇을 들었는지 들은 대로 말해달라고 했다. 대화모임이 막바지를 다다랐을 때 우리는 약속을 몇 가지 세웠다. 놀리는 것을 멈추는 것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미션과제를 정했다. 미션 과제는 매주 목요일 점심을 함께 먹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 다같이 노는 것이다. 대화모임을 마칠 즈음에 아이들의 얼굴표정은 한결 편안해보였다. 지금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물으니, 미안하고 후련하고, 편안하다고 답한다. 특별히 윤석이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중요했다. 윤석이의 경직되었던 얼굴 표정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윤석이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3주 동안 약속을 실천하기로 하며 대화모임을 마쳤다. 윤석이는 학교폭력신고를 취소했다. 그리고 3주가 지났다. 다시 모인 아이들 얼굴이 좋아보였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아이들은 매주 목요일에 함께 식사하고 함께 노는 미션을 잘 수행했다는 것이다.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 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회복적 대화모임의 경험에 대한 성찰
윤석이와 아이들은 발생한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할 기회를 가졌다. 아이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아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지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잘못한 사람이 무슨 면목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잘못했어도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말할 기회를 갖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매우 다르게 작동된다. 잘못한 행동을 했어도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고 싶고 버림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기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경험하게 되어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보게 된다. 반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으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계속 비난하게 된다. 회복적 과정은 잘못을 성찰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화해를 할 수 있도록 이끈다.
5명의 남학생들은 대화모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었고 사과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안전하게 재정립되었다.
회복적 과정은 학교폭력 은폐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김병지 선수 자녀의 학교폭력 논란은 어른들의 입장을 소통하는데 그쳤고, 당사자인 아이들 간에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폭력의 불씨를 그대로 남긴 것이 문제였다. 두 아이들은 관계 회복의 기회 없이 학교폭력처리로 가해자 피해자라는 낙인과 학급교체라는 처벌로 끝내려 해서 더 커진 것이다.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해 갈등을 더욱 드러내어 직면하는 과정과 서로를 마음으로 만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헌데, 회복적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한 편에서는 회복적 과정이 학교폭력을 은폐하게 된다고 우려한다. 학교폭력을 은폐하려면 갈등을 드러내지 않고 묻어두어야 한다. 하지만, 회복적 과정은 갈등을 덮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더욱 드러내는 과정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이 무엇인지 명료화하지 않는다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어렵기 때문이다. 갈등을 드러내고 직면하는 과정을 통해 피해자의 필요가 발견되고 가해자의 선도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회복적 과정은 절대 학교폭력을 은폐할 수 없게 만든다.
잘못에 대한 교육적 접근
학교폭력으로 우리 사회가 한 참 시끄러웠고 큰 고통 속에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문제를 해결하려했다. 그 결과 급한 불은 꺼져 가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예방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처벌강화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처벌을 강화하는 과정이 오히려 처벌 회피를 위해 학교폭력을 은폐하게 한다. 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이제는 회복적 과정을 우리 교육현장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그럴 때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의 원래 목적대로 피해자 보호, 가해자 선도, 중재를 통한 인권보호가 성취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