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10.05 03:02
정부 조사선 피해 학생 줄었는데 재심·행정심판 등 분쟁은 늘어
학부모 "학교 솜방망이 처벌" 불신, 변호사 선임해 적극 대응나서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린 건수가 4년 새 두 배가 됐다. 교육부는 4일 "학폭위가 열린 건수가 2013년 1만7749건에서 2017년 3만1240건으로 1.8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특히 학생 간 성폭력 때문에 학폭위가 열린 건수는 같은 기간 878건에서 3622건으로 더욱 가파르게 증가했다.
문제는 이런 수치가 교육부가 지난 8월 내놓은 학폭 실태 조사 통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당시 교육부 조사에서 자신이 학폭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1.3%에 그쳤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관련 조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12.3%)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교육부 조사에 잡힌 학폭 피해자 수는 17만명에서 5만명으로 줄었는데, 학폭위 개최 건수는 곱절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학폭위 개최 건수만 두 배가 된 게 아니라 학폭위 결정에 불복해 지자체에 내는 재심(2013년 764건→2017년 1868건)도 두 배 이상이 됐다. 학폭위도, 재심도 만족스럽지 않다며 행정심판을 내는 경우(247건→643건)도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이처럼 학폭 피해자는 줄었는데 학폭 관련 분쟁은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인권 의식이 높아져 과거엔 그냥 넘어갔던 사안들도 모두 학폭위라는 공식 절차를 열어 해결하겠다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학폭 분쟁'이라는 분야가 소송거리가 되면서 변호사·행정사 등 외부인들의 개입이 늘어난 탓도 크다고 한다. 자칫하면 '학폭 산업'이 생길 판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학폭 재심(再審)'이라고 치면 법률 사무소와 행정사 광고 글 수십 건이 주르륵 뜬다. 이들은 '서울시교육청 재심 담당 변호사' '학교 폭력 압도적 실력' 같은 문구로 광고 중이다. 여러 업계 관계자가 "다른 사건 안 받고 학폭으로만 먹고사는 변호사가 전국적으로 20~30명쯤 된다"고 했다. 취재팀이 찾아간 A변호사도 그중 하나다.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1년 전엔 한 달에 두세 건 정도 수임했는데 지금은 월 10건 이상 맡고 있다"며 "서울뿐 아니라 목포·여수 학폭위에도 직접 참석하곤 한다"고 했다.
학폭 변호사들의 1차 업무는 학부모 대신 학폭위에 낼 의견서 대필이다. 학부모는 감정이 북받치고 생업이 바쁜 데다 법률 용어도 잘 모르니 변호사에게 맡기는 것이다. 변호사 비용이 부담스러운 학부모를 노리고 행정사들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변호사는 학폭 사건 수임료로 보통 300만~500만원을 받는데, 행정사는 건당 10만~30만원을 받고 학폭위, 행정심판 서류를 대신 써준다. 본지가 만난 행정사 B씨는 "일을 잘 처리해준다고 소문나 2년간 월급이 세 배가 됐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입시 학원이 학부모 공포심을 자극해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며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노린 마케팅"이라고 했다. 학부모는 자녀가 가해자건 피해자건 '학폭위 결과에 아이 인생이 달렸다'고 생각해 애가 탈 수밖에 없는데 그 심리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 밑에는'학 폭위에 대한 불신'도 있다. 학폭 전문가들은 "학폭 형태가 직접 때리는 형태에서 SNS를 통해 괴롭히는 식으로 바뀌는데, 학폭 처벌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면서 "학폭위는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으니 사과 등 경징계로 족하다'고 하지만, 부모들은 '안 맞았다고 경징계가 말이 되느냐. 우리 애는 우울증에 걸렸다' 등의 불만을 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