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그림, 시

느낌 - 이성복

평화숲 2011. 6. 7. 09:24

느낌

이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 시란, 사랑이란, 아니 삶이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꽃이 피듯 불현듯 그렇게 오는 걸까
아니야. 여리디 여린 꽃 이파리 한잎도
모질고 긴 겨울을 견뎌낸 인고의 결정체인 걸
다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
다만 꽃 피는 순간의 신비로움에 눈 멀어
다만 사랑이 오는 순간의 기쁨에 눈 멀어
쓰라린 진실을 보지 못할 뿐

꽃잎이 지듯 우리의 시도 사랑도 삶도 잊혀지겠지만
꽃나무는 묵묵히 제자리에 서 있듯
우리의 시도 사랑도 삶도 이와 같아서
끝끝내 죽지 않으리
종이 위의 물방울이 말라도
얼룩과 비틀림으로 결단코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보여주듯
시든 꽃잎은 우리의 살아있음의 흔적의 상징인걸
얼룩과 비틀림을 상처로만 읽을 일은 아니지
아픔과 고통으로만 읽을 일도 아니지
시들어 썩어야 다시 꽃 피우듯
시드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지
결코 두려워 할 일은 아니야
우리의 시도 사랑도 삶도 이와 같으리
김민홍




@@@@ 이성복
1952년 경남 상주 출생
서울대 및 동 대학원 불문과 졸업
1977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
제 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제 4회 소월 문학상 수상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금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