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셀프컴패션- 크리스토퍼K. 거머

평화숲 2013. 12. 2. 01:24

 


셀프컴패션(Self-compassion)

저자
크리스토퍼 K. 거머 지음
출판사
아름드리미디어 | 2011-09-2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책은 셀프컴패션(self-compassion) 즉 ‘자기연민...
가격비교

 

 

 

1부 자기연민 발견하기

1. 자기 배려하기

 

고통 그 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진짜 괴로운 것은 고통에 맞선 분노다. -앨런 긴즈버그(시인)

 

-미셸은 자신이 불안을 받아들일수록 불안이 줄어들며, 받아들이지 않을 수록 불안이 커지는 것을 알아챘다. 얼굴 붉히기와 화해하게 됨에 따라, 미셸은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가슴 긴장, 두통, 두근거림과 같은 다른 스트레스 증상에도 똑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고, 그러자 삶이 훨씬 더 편안해졌다.

 

[고통 쪽으로 향하기]

-고통을 회피할 때의 문제는,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고통을 피하려 애쓸수록 흔히 상황은 더 악화된다.

-술마시는 즐거움이 삶을 지배하더니, 나중에는 공황 발작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좌지우지했다. 스튜어트는 즐거움과 고통이라는 순간의 마음 상태에 인질로 붙잡힌 셈이었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행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맞서 싸울수록 계속된다]

만성 요통 / 불면증 / 대중 앞에서 말하기의 두려움 / 갈등관계

대중 앞에서 말하기 불안, 요통, 불면증, 관계 갈등은 분명 차이가 있음에도, 이런 증세들에는 대체로 불편에 저항한다는 공통 요소가 있다. 불편함에 맞서 싸우면 일을 더욱 그르칠 뿐이다. 불안증, 육체적 불편함, 불면증, 단절감을 수용할 수록, 우리는 더 좋아질 것이다.

 

[가운데 길 찾기]

-마음에는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본연의 방식이 있다. 이런 방식이 '부정, 투사, 분리'같은 '방어기제'다. '분리'란 예컨대 우리가 위협을 받을 때 "그 남자는 다 좋아. 그 여자는 다 나빠"와 같이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경향을 가리킨다. '부정'이란 배우자의 알코올 중독이나 외도 같은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투사'란 받아들일 수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나 충동을 자기 우월감을 맛보기 위해 "그 남자는 인종주의자야"라든가 "그 여자는 정말 질투심이 강해"라는 식으로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수용단계들]

 1. 혐오 - 저항, 회피, 반추

 2. 호기심 - 불편함에 대해 관심 갖기

 3. 용인 - 무사히 견뎌내기

 4. 허용 - 감정이 마음대로 오가게 내버려 두기

 5. 친화 - 수용하기, 숨은 가치 알아보기

불편함 쪽으로 향하는 과정은 단계별로 이루어지는데, 고통과 마주한 가운데 서서히 유연해지고 저항하지 않게 된다. 처음에는 한바탕 혐오감을 일으킨 뒤, 문제에 호기심을 느끼면서 과정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만사가 잘 굴러갈 경우, 우리 삶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 무엇이든 전면 수용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과정은 대개 느리고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수용에서 자기 연민으로]

-치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리 생각과 감정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생각 및 감정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수용이란 무엇인가? 수용은 호기심, 용인, 기꺼운 마음, 친화를 포함한 다양한 경험을 망라한다. 수용의 반대가 저항이다. 저항이 고통을 낳는 반면, 수용은 고통을 누그러뜨린다. 수용한다는 해서 나쁜 행위를 용납한다는 뜻은 아니다. 수용이란 지금 이 순간 우리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정서적으로 열려 있음이다. 우리가 어떤 고통스런 관계에 있을 경우, 그 관계 전체를 두고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수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용은 "이건 내게 상처를 줘!"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수용은 체념이나 침체가 인다.

 수용이란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우리의 감각, 감정, 사고를 경험하려는 의식적 선택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용이란,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정서적으로 열려 있음이다. 그리고 순간 순간 있는 그대로 우리의 감각, 감정, 사고를 경험하려는 의식적인 선택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기연민이란?

자기연민이란 수용의 한 형태이다. 수용이 우리한테 일어나고 있는 것, 곧 감정이나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을 가리킨다면, 자기연민은 그런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 사람을 수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연민이란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2. 몸에 귀 기울이기

 

진심으로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가을 단풍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그윽이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가슴과 접촉하고

그들이 내 가슴과 접촉할 수 있게 하려면,

그저 간단히 주의만 기울이면 된다.

-크리스티나 펠드먼, 잭 콘필드

 

두려움과 슬픔의 감정을 차단해버렸다. 나는 나의 값어치를 놓고 세상 사람들과 언쟁하고, 미래의 꿍꿍이를 계획한다. 우리가 고통 받을 경우, 상황은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머릿속으로 소용돌이치며 밀려오는 생각과 감정에 빠져, 우리 자신은 온데 간데 없다.

알아차림이란, 상황이 힘겨울 때 우리를 몸에 안심하고 계속 머무르게 해주는 특별한 자각 상태이다. 알아차림이란 우리를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하나의 생활방식이 될 수 있다. 알아차림 상태에 있ㅇ르 때는, 굳이 불쾌한 경험에서 도망칠 필요까지는 없을 경우가 많다. 불쾌한 경험 주위에 숨통을 틔워주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충동을 억제함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자유로워지는지 명료하게 밝히는 것으로 무엇이 알아차림이고 무엇이 알아차림이 아닌지 설명할 것이다.

 

명상 지도자 기 암스트롱은 "알아차림이란 경험하고 있는 동안, 경험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 알아차림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어지는 자각이다. 알아차림에는 자유가 있다. 왜냐하면 지각한 것을 해석하지 않고 지각의 흐름에 주목함으로써 매 순간이 신선하고 생기 넘치게 되기 때문이다. 알아차리게 되면, 삶은 감각의 잔치가 된다.

 

린다 뱀버의 시

 

갑자기 내가 사는 도시가

흥미로워 보이니,

마치 내가 이곳에 휴가를 온 듯하다.

또 매사에 너그러워지는 듯하니,

인류에 대해, 인류가 도시에서

사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여기 이 교차로처럼

바닥에 쓰러진 하얀 철조망 같은 차선을 따라 차들이

운행하도록 길을 갈기 갈기 찢어놓은 방식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는 듯하다.

보도 위를 이리저리 걷는 도시 사람들

제각기 오늘 아침 일어나 옷을 차려입은 그들의

모습이, 흡사 거리를 가로 지르는 사람들을 찍은

영화처럼 보인다.

떠오르는 질문들,

이런 장면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득이 될까?

예를 들어 건축하적으로, 도시 공간과 인간의 취향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여기에는 모든 것이 충분히 다양한가? 그리고

이 사람들은, 대개,

나보다 나이가 더 들었는가 아니면 젊은가? 지금

이런 질문들은 유보된다. 이런 질문들의 부재 속에 세상에는

많은 도시가 존재하고 여기도 그런 도시 중 하나라는, 정말이지 유쾌한 느낌이 든다.

일치감치 비가 뿌렸다. 스님들이 에스플러네이드에 모래 만다라 만드는 구경을 갈 생각이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나중에 내가 샌드위치를 멀게 될지.

 

알아차림에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특성이 있고, 자유로운 느낌, 균형감, 판단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종일 물 흐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알아차림의 반대말은 아무 생각없음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이 자동조종장치처럼 아무런 의식도 없이 자동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뭔가에 정신이 팔려 있다. 우리의 주의는 우리가 겪는 고통에 납치당한다.

 

고통이라는 황소가 훤히 트인 들판에 있게 되면, 흥분을 가라앉히게 될 것이다. 알아차림은 고통을 위한 정신적 공간을 마련해준다.

 

알아차림의 수련

 1. 멈추기    2. 관찰하기     3. 돌아오기

 

 

3. 힘겨운 감정 다스리기

 

두려움, 분노, 증오와 같은 많ㅇ느 감정이 '힘겹'지만, 그 어떤 감정도 원래부터 '파괴적'이지는 않다. 힘겨운 감정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 내면과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보를 얻게 된다. 우리가 각종 감정에 집착하거나 느끼는 감정을 떨쳐내려 할 경우, 감정은 파괴적이 된다. 건강한 대안은, 마음을 열고 알아차리면서 자기 연민으로, 감정을 '붙들어' 두는 것이다.

 힘겨운 감정에 마음을 열때, 우리는 그런 감정을 내리누르려 하지 않으며, 미래의 평화와 평정을 위한답시고 현재의 생활을 우울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초래할까]

불안하게 만드는 감저잉 좀체 감지할 수 없는 근원으로부터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런 감정을 다스리기에 더 나은 위치에 서 있게 된다.

 감정이란 정말이지 우리가 맞서 싸울수록 더 강력해지는 듯하며, 흔히 "난 형편없는 인간이야!"하는 자기 비난으로 치닫는다.

 부정적 연상의 사슬을 일찍 차단하면 할수록, 더 바람직하다. 맨 처음 불쾌한 감각으로부터 혐오감이 생겨나는 '상류 쪽'에서 감정을 낚아 채면, 우리는 고요히 중심을 잡고 머무를 수 있다. 격한 감정이 주의에서 소용돌이치는 하류로 휩쓸려간 뒤에라도 여전히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다.

 

[몸의 감정 고정시키기]

우리는 감정이 일부는 마음이고 일부는 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잇다. 감정은 언제나 몸에서 표현된다. 우리가 긴장, 전율같은 힘겨운 감정으르 만드는 신체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정신적 고뇌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 .

 슬픔의 정신적 측면보다는 가슴 부위의 근육 긴장도와 같은 육체적 측면이 다루기가 훨씬 쉽다.

 몸은 느리게 움직이고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몸 알아차림은 용이하다. 감정 알아차림이 몸 알아차림보다 좀 더 어려우며, 생각 알아차림의 가장 어렵다.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성격에다 꼬리표 붙이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몸의 감각을 쭉 살펴보면서 "불쾌하다", "유쾌하다", 또는 "보통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또는 불쾌함을 느낄 때, 그저 "아야!"라고만 할 수도 있다. 꼬리표 붙이기의 목적은, 감각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면서 감각과 함께하는 데 있다.

부드럽고, 너그럽고, 다정하게 몸을 대하는 태도가 알아차림의 태도다. 이는 근육을 긴장시키고 불편함을 거부하려 드는 몸의 본능적 경향을 버리는 태도다. '부드러워지게 하기'는 육체 차원에서 일어나고, '허용하기'는 정신 차원에서, '사랑하기'는 정서 차원에서 일어난다 . 이러한 태도들이 모두 결합하면서, 신체는 집착하던 것을 놓아버릴 수 있게 된다.

 

"부드러워져라 - 허용하라 - 사랑하라"

 

'허용하기'는 여러 생각이 오고 가게 내버려두는 것을 가르킨다. 불편함이 내키는 대로 오가게 내버려두라. 마치 집을 찾는 손님처럼. "허용하라, 허용하라.. 허용하라..."

 

사랑하라. : 이런 식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사랑을 보내라. 가슴에 손을 얹고 호흡하라. 스트레스를 받는 몸 부위로 바로 사랑을 보낼 수도 있다.

 

[감정에 꼬리표 붙이기 기술]

이 수련으로 우리는 감정에 빠지기보다 감정을 '그저 감정'으로 인식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감정에 '외로움', '슬픔', '두려움', '혼란' 등 꼬리표 붙이기를 하면, 우리는 더 쉽게 힘겨운 감정과 함께 할 수 있다.

 

-주목하기

주목하기는 지각한 상태로 내면의 경험을 향하는 것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다. 1,2초 동안 말없이 어떤 감각, 생각, 감정을 '알아챔'으로써(아하, 아 그래), 도는 한 단어로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주목할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말

감정에 꼬리표 붙이기는 감정을 다스리고 또 능수능란하게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정신건강 전문 병원에서는 '감정표현 불능증' 성인들을 위한 강좌를 운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부끄러워"라는 말을 할 수없는 경우, 그 말을 할 수 있는 경우보다 화를 내거나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높다. 생각해보면, 감정에 붙일 정확한 꼬리표를 찾아내는 능력이야말로 모든 '상담치료'산업의 바탕을 이룬다 .

우리의 목적에서 중요한 것은, 그 말의 기능이다. 곧 그 말이 얼마나 감정을 잘 포착해 그 감정을 어느 정도 드러내 보일 여지를 주는지가 중요하다 .

 감정이란 원래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감정을 사라지게 만들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감정은 부정적으로 되고, 급기야 파괴적으로까지 된다.

 

 힘겨운 감정 X 저항 = 파괴적 감정

 

-감정 명상하기

부끄러움, 격분, 절망, 망연자실, 버림받음, 혐오, 공포 따위의 좀 더 강렬한 부정적 감정 가운데 일부는 규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런 감벙에 완전히 먹혀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난 형편없어"하며 "부끄럽다'고 느낄 때, 그것은 마치 그 감정을 목격한 사람이 증발해버려 이름 붙일 사람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부끄러움이 몸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의식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부끄러움을 이해할 수 있다. 몇 차례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부끄러움", "부끄러움", "부끄러움"하며 혀에서 굴릴 때, 이름 붙이기가 점점 더 쉬워지면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꼬리표 붙이기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어떻게 꼬리표 붙이기 수련을 할까? 여태 쭉 해오고 있던 알아차림 수련의 기본 틀을 따라 멈추고, 관찰하고, 돌아오라 .

 

[정신적 외상 다루기]

 

감정에 마음 열기란, 비극적 사고나 폭력적 범죄와 같은 정신적 외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특히 버거운 일이다.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자각의 범위를 넓힐 때, 우리를 동요시키는 기억과 감정을 틀림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폭넓은 감정과 새로운 관계 맺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의 풍경을 두루 익히는 것이 유익하다.

 

'우리 내면의 풍경을 두루 익히는 것이 유익하다.' 우리 내면은 다양한 풍경들이 있다.

'두려움', '걱정', '수치심' 등등의 풍경도 있고,

'감사함', '따뜻함', '친밀한' 등등의 풍경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감정에 동요되어 휩쓸리기 않기 위해,

잠시 멈추고, 나의 다양한 '내면의 풍경'을 보라.

'감사함', '따뜻함', '친밀함'의 내면의 풍경에 잠시 머문다면,

나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파커파머의 어느 책에선가 이와 비슷한 구절을 읽은 것 같다. 어디더라.....

'가르칠 수 있는 용기'인가? 찾았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 123쪽

 

'내 마음의 풍경에는 공포말고 다른 것들도 많이 들어 있으며, 그것들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힘을 얻는다.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진정한 가르침의 원천이 되는 내 마음의 어떤 장소에 기댈 수가 있다. 그것은 내 가르침의 목표인 학생들의 니면 풍경 중 어떤 장소를 겨냥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반드시 공포의 자리에서 가르쳐야 할 필요는 없다. 공포와 함께 내 마음속에 들어 있는 호기심, 희망, 공감, 정직 등의 장소에 서서 가르칠 수 있다. 공포를 느끼기는 하지만 공포 그자체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마음먹기에 따라 마음의 풍경 중 다른 장소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알아차림 수련을 하는 동안 충격적인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부디 그 기억을 억지로라도 끝장내야 한다고 생각지는 말라. 적절한 시점과 안전이 중요하다.

 

4. 자기연민이란 무엇인가?

 마음 속 가장 심오한 것이 친절임을 알기 전에,

또 다른 가장 심오한 것이 슬픔임을 알아야만 한다.

-나오미 시합 나이(시인)

 

전망이 어둡고 희망은 희미한 속삭임으로만 남아 있을 때, 그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상태에 자기연민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절실히 필요하다. 희망을 아예 접어버리고, 다음 벌어질 일에 대한 궁금증만 남아 있을 경우가 더 나을 때도 있다.

 힘겨운 감정을 다루기 우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아차림에 기초한 세 가지 기술이 있다. (1) 하나에 초점을 맞춘 자각, (2) 열린 자각 (3) 자애.  한가지 대상에 초점을 맞추기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안정 시키미며, 열린 자각은 차분하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일상의 도전에 응답하도록 돕는다.

 자애심을 발휘함으로써 우리의 경험을 다정하고 편안하게 '보듬는다'

 

[나의 자기연민은 어느 정도일까?]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자인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연민에 관한 연구에서 대부분 활용되는 '자기연민척도'를 개발했다. 이 척도에는, 자기연민의 주요하나 요소들인 자기배려, 보편적 인간성, 알아차림 및 이와 상반된는 자기심판, 고립, 지나친 동일시를 측정하는 6가지 하위 척도가 있다.

 

 자기배려 - 자기심판

보편적 인간성 - 고립

알아차림 - 지나친 동일시

 

- 자리배려

' 나는 나 자신의 결함과 부족함에 대해 관용적이다.

 일이 뜻대로 안 될 경우, 우리는 스스로를 심판하는 경향이 있어 마음의 상처에다 모욕까지 보탠다. 자기연민이 있는 사람은 일이 힘겹고 차질이 빚어져도, 가혹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따스하고 이해심 깊게 군다.

 

-보편적 인간성

우리는 불운을 당할 경우, 이렇듯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오직 자신뿐만이라고 느끼기 십상이다. 수치심은 고립되게 한다. 강렬한 감정이 가라앉고 넓은 시야에서 상황을 바라볼 때, 우로지 '나'와 '내 실수' 탓이기보다는 우주만큼이나 방대한 원인의 결과, 만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

 

-알아차림

알아차림이란 집착하지 않는 의식이므로, 차분하고 균형잡힌 태도로 고통스런 생각과 감정을 수용하는 능력을 준다. 알아차림의 반대 현상인 지나친 동일시는, 정서 반응 속에서 넋을 잃어버릴 때 생긴다. 고통 때문에 인지 능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반면에, 알아차림을 통한 자각은 우리가 언제 고통 속에 있는지, 언제 스스로를 비난하는지, 언제 고립을 자초하는지 인식하도록 도와,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분노할 때, 아드레날린이 생성되는데, 이로 인해 인지적 지능이 50% 떨어진다고 한다. 아드레날린의 희석되기 위해서는 10~15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분노했을 때, 잠시 멈추고 호흡하고, 부탁해 볼 수 있다. " 15분 후에 다시 얘기해 보면 어떨까?"

 

[자기연민은 자연스러운가?]

모든 존재는 내면 깊숙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고픈 소망을 품고 있다.

나쁜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세가지 유감스런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기비판', '자기고립', '자기도취'다. 네프의 자기 연민 3요소는 우리를 정확히 정반대 방향으로 인도한다. 그것은 자기 배려, 우리 경험 속의 보편적 인간성 인식하기, 부정적 감정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반응할까? 위험에 대한 본능적 대응, 곧 스트레스 반응이 전투, 도피, 얼어붙기로 이루어져서 그렇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세 가지 방책으로 우리는 육체적으로 살아남는 데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방책을 정신과 정서 기능에 쓸 때, 어려움에 빠진다. 방어해야 할 적이 없을 경우, 우리는 자신에게로 달려든다. '전투'는 자기 비판이 되고, '도피'는 자기고립이 되며, '얼어붙기'는 자기도취가 되어, 자신의 생각 속에 갇히게 된다.

 과학자들은 최근 스트레스에 대한 또 다른 본능적 반응를 밝혀냈다. '보살피기'와 '친구되기'다.

 보살피기와 친구되기 반응은 모유 촉진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관련되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대체로 옥시토신의 효과를 촉진시킨다.

 

[자기연민은 이기적인가?]

자기 보살핌에 시간을 좀 할애하는 게 도덕적 탈선은 아니다. 우리 문제를 남들의 문제와 비교하는 것은 슬그머니 개인적 고통을 부인하면서 회피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자기연민이 스스로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킬 개인 보호막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스스로에게 가슴을 활짝 열수록, 우리는 남들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낀다. 자기연밍는 다른 사람을 향한 친절의 토대다. 자기 자신의 특별함을 받아들일 때, 다른 사람에게도 좀 더 수용적이 된다.

 결함이 있지만 그런 자신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드러운 미소로 인살르 건넬 것이다.

결함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우리 행동이 더 나아질 수 없고 나아져서도 안된다는 말은 아니다. 수용은 바로 현재의 순간에 존재한다. 우리 각자에겐 성장할 여지가 있으며, 진정 우리는 성장해야만 한다. 아무리 서툴고 불완전하고 미련하다고 해도, 바로 오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친근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순간순간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훨씬 쉽게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적용하고 변화될 수 있다.

 

자기연민이 자기동정에 빠지는 것ㅇ르 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연민의 초기 단계는 사실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포함될 수 있다. 자아연민의 초기 단계는 사실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포함될 수 있다.

자기동정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단절시켜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축소시키는 듯하다. 반면에 자기연민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겪는 고통의 보편성에 눈뜨게 한다. 또한 자기 연민은 고통에 대해,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은, 균형 잡힌 알아차림의 감각을 갖게 하낟 .

 

자기연민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으므로, 이기적이지 안핟 .방안을 가득 채움 사람들 중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사람, 우리가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건 사리에 맞다. 이따금 그 사람이 여러분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비행기에 빗대어 보면, 객실 공기 압력이 떨어지면 우선 자기부터 산소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있다.

 

[알아차림과 자기연민]

알아차림과 자기연민 모두 공통 치유 요소는, 정서적 고통과 친해지는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여가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고통을 느끼라'고 말하고, 자기연민은 '고통 한가운데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말한다.

자기연민은 주목보다는 동기부여와 더불어 더 잘 작용한다. 자기연민이란 스스로를 향한 호의다. 자기연민은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처리할 수 있을 때까지 잔소리하지 않고, 우리의 어려움에 기꺼이 귀 기울여 들어주는 다정한 친구처럼, 마음을 달래준다.

 

[자아 돌보기]

 

[우리의 개인적 약점들]

나의 도식

포기/불안전성, 불신/학대, 정서 박탈감 / 결함/ 수치 , 사회적 고립/소외, 의존/무능력, 질병과 피해에 취약함, 곤경에 잘 빠짐/ 미성숙한 자아, 실패, 특권 의식/자기중심성, 부족한 자제력과 자기 수양, 예속, 자기희생, 승인추구/인정추구, 부정성/비관주의, 감정 억제, 인정사정없는 기준/ 혹평 일삼기, 징벌 가하기.

 

나는 감정에 꼬리표 붙이기처럼 도식에 꼬리표 붙이기가 감정을 다루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임을 발견했다.

 

[자아는 존재하는가?]

두뇌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자아'란 거의 언제나 몸과 관련되며, 우리 몸은 생존에 알맞게 되어 있다.

'무아'라는 개념은 불교 심리학에 내표된 희망의 메시지다. 무아는 진정 어떠한 고정된 자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지고 변화하는 상황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할 과제는, 고착된 자아상과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동 양식을 부드럽고 유연해지게  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무엇을 보여줄까?]

자기연님에 관한 연구가 입증한 바에 따르면, 자기연민은 우리 삶에서 부정적 사건의 충격을 완화시켜준다. 자기연민을 지닌 사람들은 자기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결과를 인정하고 자기역할에 대한 책임을 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들은 자기 성격 중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을 인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렇다고 강박감을 갖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자기연민을 지닌 사람이 낙제를 할 경우, 그런 경험을 발전을 위한 기회로 삼기 십상이다 .

자기연민을 지닌 이들은 부드럽고 다정하게 자기 경험의 진수에 빠져드는데, 그럼으로써 쓸데없이 너무 애쓰는 상태로부터 벗어난다.

 

정서적으로 싸우려들 수록, 우리는 더욱더 자기비판, 자기고립, 자기도취에 걸려들 가능성이 높다. 정서적 자유로 나아가는 길은, 고통받는 '자아'에 대한 다정함으로부터 열린다.

 

 

5. 자기연민에 이르는 길

 

 

 

 

2부 자애 수련하기

6. 자기 돌보기

 

 

 

7. 남 돌보기

 

 

 

3부 맞춤 자기연민 수련하기

8. 자기 균형 찾기

 

 

 

9. 앞으로 나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