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단연 세계 최고의 ‘범죄’ 국가다.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5%에 지나지 않지만 세계 죄수의 25%를 점하고 있지 않은가.” 2009년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이던 짐 웹(Jim Webb)이 미국의 전반적인 사법 개혁을 부르짖으며 한 말이다. 미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으로 교도소 수감자는 223만9800여 명으로, 미국 성인 107명 중 1명꼴, 인구 10만 명당 716명꼴이다. 이와는 별도로, 범죄를 저질러 법원의 보호관찰 명령을 받았거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에 가석방 결정을 받은 사람은 481만4200명에 이른다.1) 2004년말 기준으로 국제 비교를 해보자면, 미국의 교도소 재소자는 10만명당 715명으로 러시아(638명), 벨로루시(554명), 카자흐스탄(522명) 등 구 소련을 능가했으며 한국(133명)에 비해서는 5배가 넘었다.2) 2009년말 기준으론 미국 743명, 러시아 577명, 르완다 561명, 뉴질랜드 203명, 영국 155명, 호주 133명, 노르웨이 71명, 네덜란드 94명이었다.3) 이런 통계 수치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런 현실에 대해 미국인의 다수가 무관심하거나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 물음과 관련해 제기된 개념이 이른바 ‘범산 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다. ![]()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알카트라즈 섬 교도소. 주변 조류의 흐름이 빠르고 수온이 낮아 탈옥이 불가능한 이상적인 감옥으로 유명했다. 현재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출처: Centpacrr at en.wikipedia.org> 1997년 사회운동가 엔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가 처음 쓴 이 말은 미국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가 1961년 1월 17일 대통령직을 떠나면서 한 고별연설에서 경고한, 군부를 포함한 행정부와 산업체가 하나로 결탁한 이른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는 말을 원용한 것이다. prison은 교도소이니 ‘교산복합체’라는 번역도 가능하겠지만, '범죄(犯罪) 규율의 산업화(産業化)'라고 하는 관점에서 ‘범산(犯産) 복합체’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범산복합체의 핵심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교도소의 민영화다. 이에 대해 정치학자 벨덴 필즈(A. Belden Fields)는 “사실상 모든 일을 민영화한다는 편집증에 사로잡힌 미국의 자본주의 국가와 각 주들은 막스 베버가 국가의 본질적이고 독특한 특징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기능, 즉 무력과 폭력의 합법적 사용이라는 기능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와 벤처 사업가들에게 실제로 넘겨버렸다. 그럼에도 이 배후의 논리를 무찌르기는 쉽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외부의 ‘타자들’에 대한 전쟁이 민간 사업자들과 주식회사에 합법적인 이윤을 가져다 준다고 하면, 내부의 ‘타자들’을 상대로 한 ‘범죄와의 전쟁’이 ‘우리들’ 가운데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지 말아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더구나 현재 경제적인 ‘세계화’가 우리 앞에 있듯이, ‘교도소 산업’에서 미국에 본부를 둔 주식회사들은 감옥을 짓고 관리하는 계약을 해외에서 따내고 있다. 이는 형벌을 덜 가혹하게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로 하여금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광기에 동참하고 감금의 비율을 높이도록 이끄는 유인이 될 수 있다.”4) 그러나 미국 모델의 세계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 어떤 나라도 미국처럼 되긴 어려울 것이다. 미국 범산복합체의 본질은 인종문제이기 때문이다. 교도소 수감자의 40% 이상이 흑인이다. 수감자는 미국 성인 107명 중 1명꼴이라지만, 흑인은 14명 중 1명 꼴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 그러니 왜 ‘인종차별’ 논란이 일지 않겠는가. 오하이오 주립대 법대 교수인 미셸 알렉산더(Michelle Alexander)는 2010년에 출간한 [뉴 짐 크로(The New Jim Crow)]에서 1960년대의 흑인 민권운동에 대한 반발(backlash)이 대량 투옥(mass incarceration)으로 나타났으며, 대량 투옥은 과거의 짐 크로(Jim Crow: 흑인차별정책)를 대체한 새로운 인종통제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대도시 젊은 흑인의 다수가 감옥에 갇혀 있는 건 글로벌 경제 시대에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치 않은 동시에 선거에서 가난한 백인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인종적 뇌물(racial bribe)로 활용된 것과 무관치 않다.5)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 특히 ‘마약과의 전쟁’이 외쳐지기 시작한 1970년대가 흑인 대량 투옥의 출발점이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1970년대 초 교도소 수감자는 30만명에 불과했지만, 그로부터 20년 만에 200만명을 넘어서게 된다. 이 시기엔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만으로도 투옥되었기에, 증가된 투옥자의 다수는 마약사범이었다. 연방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화이트칼러 범죄 단속 인력을 반으로 줄이고 마약 단속 인력을 대폭 증강시켰다. 마약중독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예산도 대폭 삭감되었다. 연방정부는 2010년에만 이 전쟁에 150억 달러를 사용했지만, 2011년 이 전쟁을 평가하기 위해 구성된 ‘19인 위원회’는 ‘마약과의 전쟁’이 실패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주장대로 ‘마약과의 전쟁’의 목적이 다른 곳에 있었다면, 실패가 아닐지도 모른다. 마약 관련 투옥자의 90%가 흑인과 히스패닉이었기 때문이다. 대량투옥은 기존 인종적 위계질서를 재생산하는 주요 수단이 되고 있는 셈이다.6) ![]() 한 흑인 수감자가 오하이오의 교도소(Youngstown Prison gymnasium)에서 면회를 하고 있다. 현재 미국 교도소 수감자의 40% 이상이 흑인이다. 전체 수감자는 미국 성인 107명 중 1명 꼴이라지만, 흑인은 14명 중 1명 꼴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백인은 마약을 좋아하지 않는가? 그건 아니다. 흑인이 많이 쓰는 크랙 코카인(crack cocaine)과 백인이 많이 쓰는 파우더 코카인(powder cocaine)에 대한 형량 차이가 ‘100 대 1’이라는 게 그런 인종 격차를 낳게 한 주요 이유였다. ‘100 대 1’을 합리화한 주요 논거는 크랙의 가격이 비교적 싸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더 쉽게 빠져들 수 있으며, 중독성이 더 강하며, 폭력범죄와 더 연관돼 있다는 것이었지만, 이 논거를 반박하는 주장도 많다. ‘100 대 1’의 법칙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져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공정형량법(Fair Sentencing Act)’이 제정되었다. 오바마가 2010년 8월 3일 서명한 이 법 덕분에 형량 차이는 ‘100 대 1’에서 ‘18 대 1’로 줄어 들었다. 그러나 사법처리 과정상의 흑인 차별도 흑인 수감자를 많이 낳게 한 요인이기 때문에 그 법에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예컨대, 1995년 크랙 사용자의 52%는 백인, 38%는 흑인이었지만 크랙 범죄로 형을 받은 사람은 88%가 흑인, 4.1%가 백인이었다.7) 마약 외에 이른바 ‘학교-교도소 파이프라인(school-to-prison pipeline)’도 흑인의 대량 투옥을 거들고 있다. 학교에서 작은 범죄를 저지른 문제 학생들을 곧장 교도소로 보내버리는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빈곤층 지역 공립학교들의 파이프라인이 굵기 마련인지라, 교도소나 소년원으로 가는 학생들의 다수는 흑인이다.8) 흑인들의 대량투옥은 정치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48개 주에서는 투옥된 범죄자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14개 주는 전과자들에 대해 영구적으로 투표권을 제한하며, 그들은 공직에 출마할 수도 없다. 이런 이유로 440만명의 미국인이 공민권에 제한을 받고 있다.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에서는 흑인 네 사람 중 한 사람은 투표권이 없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앨 고어가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에게 패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9) ![]() 미국 내 민영 교도소 1위 업체인 CCA가 소유한 교도소 ‘쉘비 트레이닝 센터(Shelby Training Center)에서 학생 수감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학교-교도소 파이프라인(school-to-prison pipeline)’은 학교에서 작은 범죄를 저지른 문제 학생들을 곧장 교도소로 보내버리는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빈곤층 지역 공립학교들의 비율이 높고 따라서 교도소나 소년원으로 가는 학생들의 다수는 흑인이다. 한편 2008년 펜실베니아주에서는 민영 교도소업체들이 청소년범들에게 강한 처벌을 내려달라고 판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범죄행위로 인해 투표권을 빼앗기는 흑인의 수가 많아지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민주당에 표가 안 가서 좋고, 범죄에 대한 공포로 공화당에 표가 더 몰려서 좋은 것이다. 게다가 죄수들은 투표를 할 순 없지만 인구 통계엔 잡히기 때문에 교도소를 유치하면 그 지역의 예산과 각종 보조금이 늘어난다. 교도소 시설 건설 관련 가치는 제외하고, 수감자 1명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돈 액수는 2만5천달러에 이른다. 일자리도 늘어나고 실업률도 줄일 수 있다.10) 이거야말로 모든 정치인의 꿈이 아닌가. 게다가 교도소 노동력은 인건비가 최저인데다, 보험이 없어도 되고, 늦게 도착하는 법도 없고, 파업도 없고, 풀타임으로 이용할 수 있는 최상의 노동력이다. 이 맛을 본 민영 교도소들은 대량투옥을 위해 맹렬한 로비 활동을 벌인다. 기업의 흥망이 수감자의 수에 달려 있는데, 어찌 가만 있을 수 있겠는가. 민영 교도소 1위 업체는 1983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로 2011년 기준으로 연매출 17억달러, 2위 업체인 GEO그룹은 16억 달러를 돌파했다. CCA는 1984년 미 이민국이 단속한 불법체류자를 추방하기 전까지 보호하는 시설계약까지 따냈는데, 불법이민자가 1200만 명이나 되는 미국에서 이 사업은 마르지 않는 돈줄이다. CCA는 2012년 2월 미 전역 49개 주정부에 보낸 공문에서 주 교도소들의 매입을 제안하면서 그 조건으로 20년 위탁계약과 90%의 최소 수용률 보장을 요구하기도 했다.11) 민간 교도소들은 범죄가 아닌 것을 범죄화하고 범죄에 대해 강한 처벌을 내리도록 하는 입법을 위해 상시적인 로비 활동을 전개한다. 2008년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민영 교도소업체들이 청소년범들에게 강한 처벌을 내려달라고 판사들에게 260만 달러의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12) ![]() 젊은 소녀들이 텍사스에 위치한 불법이민자 센터(T. Don Hutto Residential Center) 내 CCA의 마크를 지나쳐 가고 있다. CCA 는 1984년 이민국이 단속한 불법체류자를 추방하기 전까지 보호하는 시설계약을 따냈다. 불법이민자가 1200만 명이나 되는 미국에서 이 사업은 마르지 않는 돈줄이다. 교도소 출소자의 3분의 2는 다시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고, 40% 이상은 3년내에 교도소로 다시 돌아간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다.13) 대량 투옥의 문제는 투옥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교도소에 가 있는 아이들은 150만명에 이른다. 이 아이들은 생계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최악의 상황에 처해짐으로써 빈곤과 범죄의 악순환이라고 하는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14) 이 모든 문제를 혁파해보자고 나온 것이 이른바 ‘교도소 폐지 운동(prison abolition movement)’이다. 이 운동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아나키스트 운동도 있지만, 큰 흐름은 지금 당장 무조건 교도소를 없애자는 게 아니라 투옥을 최소화하는 장기적 변혁을 꾀하는 운동이다. 사법정의의 기본 방향을 범죄자들의 투옥(incarceration)에서 그들의 교육, 주택, 건강을 돌보는 쪽의 역량강화(empowerment)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폐지’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이 주제의 의제화를 위해서다.15) 교도소 폐지 운동가들은 범산복합체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징벌 민주주의(punishing democracy)’는 관련 정부기관들의 예산 변화뿐만 아니라 이 기관들의 목표와 기능까지 변질시키고 있으며, 이는 사회 전반에 대한 냉소주의와 불신을 키워 미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다고 우려한다.16) ![]() 텍사스에 위치한 헌츠빌(Huntsville) 교도소 앞에서 시위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여론의 호응도가 낮기 때문이다. 일부 운동가들은 1971년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더티 해리(Dirty Harry)] 이래로 ‘법과 질서(law and order)’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들이 ‘응징의 영웅들’을 양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범산복합체에 호의적인 국민정서를 조성한 게 아니냐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17) 이념•정치적인 범산복합체 비판으론 냉담한 여론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운동가들은 우선 일반 대중이 수감자들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 즉 “그들은 흉악하고 잔인하며, 따라서 영원히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주기 위해 ‘수감자 예술운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수감자들의 문학•미술 작품들을 대중에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고통과 상처와 회한, 그리고 그들의 선한 면을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범산복합체의 비극을 폭로하는 동시에 투쟁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18) “왜 동물원의 동물들은 자해(自害)를 할까?” 영국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인간동물원(The Human Zoo)]에서 “좁은 공간에 밀집돼 있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1년에도 몇 차례씩 미국의 어느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다쳤다는 외신이 전해지곤 하는데, 이 폭동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과밀(過密)이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는 33개의 성인 교도소 시설이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2013년 2월 현재 수용 인원이 14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 사람을 교도소에 가둬두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2만5천-4만 달러에 이른다. 대량 투옥 방식을 바꿔 그 돈을 범죄예방, 직업교육, 가난구제에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까지 말한 범산복합체의 존재로 인해 실현되기 어렵지만, 서둘러 포기할 일은 아니다. 조만간 제2의 민권운동 혁명이 터져 나와 미국이 또 한번 놀라운 진보를 실현할지 누가 알겠는가. <강준만> [출처] 왜 교도소는 성장산업이 되었나?|작성자 지식스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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