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그림, 시

누가 조용히 생각하는 이를 가졌는가 - 박노해

평화숲 2015. 10. 8. 00:02

누가 조용히 생각하는 이를 가졌는가

 

파도치는 밤바다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긴 이를 본 적 있다

 

그는 격류 속에 두 발을 딛고

깊은 생각으로 길어 올린 빛을

어둠 속의 등대처럼 발신하고 있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갈 때

긴박한 행동들이 사고능력을 압도할 때

 

누가 조용히 생각하는 이를 가졌는가

 

속도 빠른 변화의 한 가운데서

심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직관하는 사람

미래의 눈빛으로 전체를 뚫어보며

시대정신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사람

 

누가 조용히 생각하는 이를 가졌는가

 

 

- 박 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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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일에 당황해하고 얼어버리는 때가 많다. 말문이 막히고 머리는 하애지면서 성찰되지 못한 말을 횡설수설한다. 그 말에는 진정성도 없고 논리도 없다. 나의 서툰 대응은 나를 깎아 내리게 되고,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폭풍 속에서도 고요히 생각에 잠길 수 있을까? 급박한 상황에 같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고요히 서 있을 수 있을까?

아, 내 안의 나여, 외부의 흔들림에 더욱 요동치지 말고, 함께 흔들리면서도 조용히 잡아주오. 천천히 잡아 주오. 중심을 잃지 말아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