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생활교육의 과제
회복적생활교육센터 대표
박숙영
학교의 교육적 기능 회복을 위해
회복적 생활교육의 6년차에 접어들면서 그동안의 실천 과정을 통해 제기된 과제들에 대해 돌아보고자 한다.
2012년에 개정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대한 법률’은 처벌 강화에 방점이 있다. 당시 학교폭력실태가 드러나면서 사회 여론은 충격과 분노로 강한 처벌을 요구하였고, 그로 인해 학폭법은 ‘사소한 괴롭힘도 범죄’라는 기조로 개정되었다. 처벌 강화의 구체적 내용으로는 가해학생의 학교폭력 처리 결과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여 진학과 취업에 영향을 주는 것과 학교폭력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있는 교사를 법적 처벌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입장에서는 은폐의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대화과정을 통한 교육적 노력을 하기 보다는 가해학생을 가려내고 징계를 처리하는 쪽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학교폭력에 대해 응보적이고 사법적으로 접근하게 했고, 반면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약화시켰다.
지난해 12월 교육부가 발표한 ‘2015년 2차 학교 폭력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3만 4,000명이다. 전체 응답자들의 0.9% 수준이다. 전년과 비교하면 1만 5,000명(0.3%p) 감소했다. 학폭법 개정 이후 4년간 꾸준히 학교폭력피해는 줄고 있다. 처벌강화가 학교폭력률을 단기간에 낮추는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학교문화의 정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학교폭력의 경각심을 주기 위해 처벌에 의존해왔다면, 이제는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장기적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할 때이다. 즉,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적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과 절차,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의 교육적 기능 회복을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회복적 과정의 의무화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적 대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회복적 과정을 의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학폭법에 의하면 가해학생이 징계를 받으면 모든 사안은 종결된다. 하지만, 가해학생이 징계를 받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고, 오히려 학폭위 과정을 통해 관계가 더 악화되거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가·피해자 간에 발생한 일과 그 피해에 대해 서로 공감하고 사과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관계악화는 모두의 안전의 위협하지만, 사과와 화해의 과정을 통한 관계회복은 모두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서의 회복적 과정을 도입해야 한다. 학교폭력문제 해결을 위한 회복적 과정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1) 학교폭력자치위원회 과정에서 화해조정절차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징계나 처벌에 집중하기 보다는 가·피해자들 간의 대화를 통해 화해조정 절차를 1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가 우선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화해조정과정의 결과는 학폭위 사안의 최종 종결에 반영한다.
학폭접수 (전담기구) | → | 피해확인 (피․가해 개별 대화 잰행) | → | 회복적 대화모임 (해법탐색, 공동체 구성원 참여) | → | 책임이행 (개인+공동체) | → | 학교폭력 종결 여부 심사 및 결정 (학교폭력자치위원회) |
지금까지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역할은 가해학생에 대한 적합한 양형을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1차 목표와 역할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조정과 화해를 통한 관계회복이 되어야 한다. 조정과 화해의 과정 이후에 문제 해결이 미흡하거나 가해학생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징계 처벌과정을 진행한다.
2)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중재 조정 전문가 포함
회복적 과정을 위해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위원들은 반드시 회복적 사법에 대한 의해와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학폭위 구성을 보면 학부모와 교사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고, 외부 전문가는 20% 미만이다. 학교관계자인 학부모와 교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실제로 중립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회복적 과정을 의무화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중재 조정 전문가가 학폭위에 포함되어야 하며, 모든 학폭위 위원들은 회복적 정의에 대한 교육을 이수하여야 한다.
3) 학교폭력 처리 결과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조처 폐지
현재 학폭법은 학폭위 결과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징계처리가 진학과 취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학폭법이 비교육적이고 응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항목이다. 학폭위의 결과에 불복할 경우에 재심청구가 가능한데, 재심청구 건수가 갈수록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교과부의 발표에 의하면 피해자 측의 재심 청구는 2012년 267건에서 2014년 493건으로 84.6%, 가해자 측 재심 청구는 305건에서 408건으로 33.8% 증가했다. 학폭위 결과에 대한 불만족뿐만 아니라, 징계처리가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입시체제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교육구조에서 학폭 결과를 생기부에 기록한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매우 치명적 조치이며 가해학생에게는 낙인효과를 불러온다. ‘학교폭력예방과 대책에 관한 법률’의 목적이 ‘가해학생의 선도와 피해학생의 안전, 학생들의 인권 보호, 학생들의 사회구성원으로 육성’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학폭위 과정에서는 최대한 학생들의 낙인효과를 억제할 수 있어야 하며, 학생의 존재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수치심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학폭결과의 생기부 기록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매우 부적합한 방식으로 반드시 폐지되어야 할 항목이다. 참고로 소년법 제 32조에 의하면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 한다’라고 제시되어있다. 학교폭력법보다 더 심각한 폭력사안을 다루는 소년법에서조차도 범죄사실이 장래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는데, 학폭법의 경우는 그보다 경미한 사안으로도 장래에 영향을 주도록 한 것으로 매우 지나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4) 학폭법 개정의 필요성
회복적 생활교육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6년차에 들어선다. 그동안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을 인식하는 속도와 범위가 확대되고 있고,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학교도 많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시스템과 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실천의 한계가 있다. 회복적 과정을 실시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다. 위에서 제시한 회복적 과정을 의무화하기 위해서는 회복적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이 필요하다. 지금의 학폭법 (제18조 제1항)에서는 ‘발생한 학교폭력과 관련한 분쟁이 있는 경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그 분쟁을 조정할 수 있다’라는 분쟁조정 기능 규정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분쟁조정은 발생된 손해에 대한 배상(배상금액, 지급방법, 배상에 대한 법적 효과 등)을 의미한다. 가․피해자 간의 관계회복을 위한 회복적 과정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적용하기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분재조정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담당하고 있어서 전문성과 공정성,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학교가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조정을 위한 회복적 과정을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법적으로도 가능할 수 있도록 현재의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
회복적 사법은 기존 사법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국제적으로도 회복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확산되고 있다. 특별히 유엔은 2000년 범죄와 정의에 관한 비엔나선언에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였고,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도입하도록 했다. 국제사회의 사법시스템은 회복적 사법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소년범죄에 대해서는 회복적 사법을 운영하기 위한 시도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법 분야에서의 변화도 이미 회복적 과정에 대한 필요성과 실효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더구나 교육기관인 학교가 여전히 잘못에 대해 응보적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가고 있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회복적 과정 도입을 위해 현재의 학폭법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2. 지역사회 및 지역 단체와의 연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교육은 학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래세대를 교육하는 데에는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학교는 이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교의 문제를 학생 개인의 문제로 보거나, 교사 개인의 문제로 본다면 지금 겪고 있는 학교의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고 단편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에너지를 학교 교육에 쏟아 붓고 있지만 에너지가 낭비되고 소진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단편적 해결책들 때문이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일부이고, 지역사회는 학교를 책임져야 한다. 교육의 전문성은 교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의 교육적 전문성을 수용하고 학교는 문을 열어 지역과 연결해야 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지역사회 및 단체와의 연대가 중요하다. 지역사회의 중재전문가나 단체들이 학교의 갈등 조정 ․학교폭력 관리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캐나다 벤쿠버의 경우에 지역의 회복적정의 실천단체가 학교의 갈등조정이나 학교폭력의 회복적 실천을 돕고 있고, 영국의 경우에는 학교폭력감독관이 있어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발생하는 학교폭력문제를 감독한다. 현재 학교에서의 폭력 사안은 학교폭력담당 교사가 맡고 있는데, 실재로 학교현장을 들여다보면 학교폭력담당 교사는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가․피해 학생들 상담, 학폭위 소집, 학폭위 회의 진행, 학교폭력 결과에 따른 가해학생의 처벌 조치와 지도 등으로 수많은 행정업무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교사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수업에 소홀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교사의 에너지가 충분히 수업과 교육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학교폭력 관련 업무는 제 3자의 중재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학교폭력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하며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수 있다.
학교폭력 사안을 지역사회나 단체가 분담해줌으로써 미래세대의 교육을 위해 지역사회와 학교가 함께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3. 회복적 실천가의 자기돌봄
회복적생활교육 실천을 6년차를 앞두고 그동안 여건이 되지 않은 학교현장에서 힘들게 실천해 오신 선생님들을 생각할 때 매우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충분한 여건과 환경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해온 선생님들 덕분에 회복적 실천의 가능성들을 확인하고 확대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회복적 생활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학교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교사 개인의 희생만으로 유지되도록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회복적 실천을 위해 제기되는 제도적 문제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하는 현장교사들이 지쳐서 포기하지 않도록 돌봄과 지원을 받아야 한다. 즉 회복적 실천가의 내면을 돌보기 위한 계획과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
회복적 실천가로서 교사의 자기 돌봄을 위한 과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교사공동체 세우기
현장 교사를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사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서로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고 용기를 주는 교사공동체의 힘은 무엇보다 크다. 교사 공동체를 통해 교사 자신을 발견하고 자각하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며, 회복적 실천을 위한 훈련과 체득의 시간을 갖고, 실천들이 실패하더라도 공동체에서 지지를 받으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2) 독서활동
늘 깨어 있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사회의 흐름을 자각하고 주어진 현실에 끌려가기 보다는 주도해 나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 독서는 매우 도움이 된다.
3) 내면의 힘 키우기
현 한국에서의 회복적 실천은 현장 교사의 자발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 운동은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정성과 열정과 성실함에 의존해 왔고, 그로 인해 작은 힘이지만 큰 변화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사의 자발성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점점 교육청에 알려지고 관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어 관에서 지원을 하거나 관의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관에서의 관심과 지원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관주도적으로 갈수 있고, 관료적․행정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회복적 실천을 하는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면의 진정성과 열정, 성실성을 지켜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협력할 사람이 없더라도, 대가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힘과 진정성을 지킬 수 있는 분별력과 자기통제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힘은 내면에서부터 나온다. 이를 위해 회복적 실천가로서 교사는 자신의 내면을 위한 자기 돌봄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이 충만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돌봄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결론
회복적 생활교육은 한국 상황에서는 아직도 시작단계이며 확산과 정착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갈 길이 멀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학교폭력문제 해결과정에서의 ‘회복적 과정 도입’이고, 이를 위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이라고 판단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의 학폭법은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너무 많은 행정력 낭비와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있다. 정부는 학교폭력문제해결의 일환으로 학교전담경찰 인력을 증가시켰다. 학교전담경찰의 역할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경찰력만 증가시키면, 학교의 교육적 기능은 더욱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젠 학교전담경찰 인력 증가가 아닌 상담사 또는 중재조정전문가 인력을 양성하고 도입하는 것이 더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박숙영의 회복적생활교육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교육 실험, 회복적 대화모임 효과성 설문조사 결과 (0) | 2016.10.13 |
---|---|
[스크랩] 학교 안에 경찰력 확대를 우려한다. (0) | 2016.10.13 |
[스크랩] 교사의 진정한 책무는 학교폭력 신고인가? (0) | 2016.10.13 |
[스크랩]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딱지 (0) | 2016.10.13 |
[스크랩] 학교폭력해결을 위한 회복적 과정 (0) | 2016.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