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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에 갇힌 아이들, 욕설을 버는 사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EBS가 지난달 초 중·고생들의 언어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의하면 아이들은 마치 욕을 하는 기계와 같았다. 아이들의 언어는 마치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발표에 의하면 조사대상인 중고등학교 학생 4명은 친구 등과 4시간 동안 평균 194.3회의 욕설을 내뱉었다. 이는 1시간에 총 49번, 75초에 한 번씩 욕을 한 셈이라고 한다. 조사 대상 학생은 중학생 2명과 고등학생 2명으로 각 중학교와 고교에서 ‘평범한 학생’과 ‘욕설을 잘하는 학생’을 각각 한 명씩 추천받아 조사했다고 한다. 발표 내용만으로 보면 욕설을 잘 하는 학생과 평범한 학생 공히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보아도 조사방법은 문제였다. 이들 학생에게 윗옷 호주머니에 소형 녹음기를 넣고 다니게 하고 ‘신체 활동량을 조사하는 기구’라고 속였다고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실험대상이 되어 자신들의 말이 그대로 녹음되어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조사 이후 학생들이 느껴야 하는 모욕감과 배신감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어이가 없다. 이런 식의 조사가 아니라도 학생들이 욕을 달고 산다는 조사는 기존에도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구지 이런 식의 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예 조사내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고 해서 조사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은 처음 자신이 조사대상이라는 사실을 의식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습관이 자연스럽게 베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늘 학생을 다루는 태도가 이 모양이니 문제인 것이다.
조사결과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문제다. 한 조사 관계자는 "실험이 진행되는 도중에 학생들이 다른 학생과 싸움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학생들이 일상적인 대화에서 습관적으로 욕을 섞어 쓰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평소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학생들 입에서도 스스럼없이 욕이 나오고 있는 것도 심각한 현상이다. 교사들은 "이제는 문제 학생뿐 아니라 모범생까지도 욕을 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 온 사실이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진출처 : 다음이미지>
이와 관련 한 언론은 “욕설이 학생들의 습관이 돼버린 것은 오랫동안 입시 위주 교육이 이뤄지는 동안 학생들이 인터넷·영화 등에 나오는 욕설 문화에 방치된 결과”라고 전문가의 말을 빌려 전하고 있지만, 실상 그 언론이 초중고 일제고사를 부활시켜 학력경쟁을 심화시킨 현 정부의 앵무새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돌이켜 보자.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70년대 중후반에도 우리들은 욕설을 달고 살았다. 이번 조사에서 들어난 '×발' '×발놈' '×발년' 등 성적(性的)인 요소를 포함한 대부분의 욕은 당시에도 일상어나 다름없이 쓰였다. '병신' '새끼' '병신새끼' '돼지새끼' '잡새끼' '미친년' 등 상대방을 비하하는 욕설은 물론이고, '닥쳐' '뒤져' '처맞을래' '눈깔아' 등 상대방을 위협하는 욕설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쩐다(어떤 상황이 매우 대단하다)' '엠창(상대방의 엄마를 창녀라고 욕하는 말)' '야려(째려봐)' 같은 저속한 신조어의 경우는 그에 맞는 신조어가 충분히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욕설이 학생들 사이에서는 친구간의 친근감을 표현하는 일종의 문화라는 점이다. '×발'은 욕이지만, 상황이나 대화에 따라 긍정이나 동의 동조 또는 부정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이처럼 욕설이 학창시절의 중요한 특징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유. 뻔하다. 통제되고 억압된 제도의 틀에서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에게도 욕망의 배출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행복은 성적순인 우리 학교가 아이들의 욕망을 거두어줄 아량은 없다. 기어코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꼰대들이 우글거리는 학교에 뭘 바라겠는가.
결국 아이들이 자신들의 억압된 욕망과 자아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말이다. 이것마저도 부모와 선생들은 틀어막지 못해서 안달이겠지만, 그러니 아이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대상으로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친구의 이름보다는 '야! ×발놈'이라고 말하면서 어떤 심리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친구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을 '×발놈'이라 부른 그 친구에게 똑같이 '×발놈'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은 억압되고 통제된 자신들의 억눌린 자아에 일말의 청량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학창시절에 국한된 문화로 보기 어려운 것은 성인들도 비슷한 환경이 주어지면 욕설이 상호 동질감과 카타르시스의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반복된다는 점이다. 일테면, 군대랄지 예비군 훈련장, 심지어 중고등학교의 동창회 모임에서마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욕설대화가 자연스럽다.
사실 이런 욕설에 의한 동류의식과 카타르시스는 무척 고전적인 것이다. 욕설은 예로부터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층인 민중이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긍정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착취당하며 비인간적인 삶을 살았던 민초와 민중의 문학 속에는 이같은 욕설의 긍정의 미학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한이든 한이 아니든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그 끈질긴 생명력의 기저에는 해학과 풍자가 있다. 그 해학과 풍자에서 욕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어른들의 세계도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방이 없을 때면 튀어나오는 험한 욕설과 뒷담화는 아이들의 욕설 저리가라다. 그런 욕설과 뒷담화가 없는 대화래 봐야 시시껄렁한 연예 오락프로를 울거먹는 휘발성 대화가 전부이지 않는가. 괜히 점잖은 척 체면을 차리고 격식을 갖추는 자리래야 서로 스트레스만 쌓인다. 차라리 욕지기가 치솟으면 참을 필요가 없다. 욕을 참으면 병이 되고, 사회적 비용만 올라 갈 수 있다.
이처럼 학생들의 일상적인 욕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이런 욕설을 통하여 자신들의 처지를 긍정하고 학교라는 통제된 사회에서 그나마 밝고 꿋꿋하게 생활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중요하다. 때문에 이런 조사에서 들어난 결과만을 가지고 우리 학생들이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는 비난이나 비판보다는 우리 학생이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참된 학교현장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절실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75초마다 욕을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75초마다 욕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우선 찾아야 한다. 아이들이라고 욕설을 입에 달고 살고 싶겠는가. 욕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환경에 절망하지 않고 어떡해든 적응해 보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 기성세대가 오히려 미안해지지 않겠는가?
이명박 정부 초기 촛불집회에서 아이들은 일제고사 부활과 자율학습 0교시 수업 등 질식할 것 같은 학력경쟁을 온몸으로 거부한바 있다. 그러나 숱한 학부모와 학생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MB정부는 이를 강제했다. 그 결과 이제 학교현장은 비틀린 어른들의 욕망과 1등만이 살아남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각축장으로 전락했다. 질식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욕설로 숨을 쉬고, 욕설로 내일을 그린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욕설을 참고는 살 수 없는 사회로 전락했다. 그러니 마음껏 욕을 하자. 욕조차 못하면 우리가 산목숨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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