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으로 다른 사람 조정하기'라는 말이 계속 내게 남아 있다.
너무 오랫동안 내게 익숙하고 당연시 해왔던 패턴이다.
도덕수업의 기본 흐름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덕 시간에 나는 '죄책감으로 학생들의 변화를 조정하려고 무던히 애써왔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수업 중에 사용했던 자료들도 대부분,
극단적인 상황, 불행한 상황, 불의한 상황을 표현한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두려움과 죄책감이 나의 수업 재료였던 것이다.
그래서 도덕은 생기가 없고, 부담스럽고 무겁다.
도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당의'였다.
'당의'에는 질문도 없고 협의도 없다. 상호성도 없다. 소통도 없다.
도덕수업은 '당의'의 폭력에 의해 진행되었다.
도덕 시간의 '협동수업'도 폭력적이었다.
자율적 선택도 없고, 융통성도 없다.
'죄책감 & 두려움으로 다른 사람 조정하기'를 멈추고자 한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존중과 책임감으로 다른 사람에 성장에 기여하기'
나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다만, 도울 수 있을 뿐이다. 기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내어주기' 방식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은 어떤가?
그건 죄책감과 두려움을 주는 방식으로 내게 다가오는가.
아니면, 존중과 책임감으로 나를 성장시키시는 것으로 다가오는가.
나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눈물이 나고 내가 순간 무너진다.
무엇이 무너지는가? 내가 지켜오던 삶의 방식들이 그냥 무너진다.
꿈쩍도 하지 않는 내 삶의 벽과 방식들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냥 무너진다.
무너진다는 것은 나의 변화와 성장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내게 죄책감을 심어주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다.
나에 대한 사랑, 나에 대한 존중과 배려, 공감으로 다가온다.
사람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은 죄책감과 두려움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