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독립하기 전 영국 식민지 뉴저지에 살았던 퀘이커 교도 존 울만(1720~1772). 재단사였던 울만은 주로 노예 노동으로 부자가 된 퀘이커 농부들과 사업가들 틈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울만은 노예제도는 불경한 제도이므로 퀘이커 교도들은 모두 노예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는다. 그 이후로 울만은 20년동안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이 계시를 케이커 교도들과 나누는데 헌신했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께 받은 계시를 나누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농가를 방문했을 때 노예들이 조리하거나 차린 음식은 먹지 않았다. 무심코 노예의 노동으로 이득을 봤다면 그는 그 대가를 반드시 지불했다.
물론 동료 퀘이커 교도들이 울만의 메시지를 환영한 것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퀘이커 교도들도 분리된 삶을 사는데 누구 못지 않은 달인들이기 때문이다.ㅣ 퀘이커 교도들이 발간한 자기 풍자적인 경구집에 쓰여 있듯, 그들은 "선을 행하러 이 나라에 와서 결국 돈벌이에 성공했다" 부유한 퀘이커 지주들이 울만의 메시지를 따르려면 재정적인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존 울만은 변함없이 자신의 진실을 말했다. 그는 "만인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퀘이커 교도들의 비전과 노예 소유라는 현실 사이의 비극적 간극에 서 있으면서 마을에서 마을로, 농장에서 농장으로, 모임에서 모음으로 여행하며 혹독한 긴장을 견뎠다. 그는 퀘이커 교도들이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일치된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그 혹독한 긴장을 20년동안이나 붙들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악을 맞아들이고, 너무나 오래 그 악에 집착했던 한 기독교 커뮤니티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퀘이커 교도들은 이 나라에서 노예를 풀어 준 첫 번째 종교 커뮤니티였다. 그들은 남북 전쟁이 발발하기 80년 전에 노예를 풀어주었다. 1783년에는 인간의 노예화로 인한 "여러 악행과 부정한 거래"를 바로잡기 위해 미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1827년 이후에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남부에서 북부나 캐나다로 탈출하는 노예를 돕는 비밀 조직과 방법)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퀘이커 교도들은 미국 역사 초창기에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존 울만이라는 사람이 현실과 가능성 사이의 긴장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퀘이커 커뮤니티 또한 좀 더 온전한 존재 방식으로 열릴 때까지 기꺼이 그 긴장을 붙들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울만은 내쫓거나 노예제도에 찬성하는 다수파를 편들어 줄 투표를 함으로써 그 긴장을 빨리 해소하려는 충동에 굴복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현실과 가능성 사이의 긴장이 자신들의 심장을 찢어 정의, 진실, 사랑에 열릴 때까지 그것을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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