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상처 더 줄까봐 .. 천안함 유족들 조용히 청소·빨래만

평화숲 2014. 5. 1. 09:40

상처 더 줄까봐 .. 천안함 유족들 조용히 청소·빨래만

28명 진도체육관서 봉사
"내가 받았던 도움 갚으러 와"
신분 안 밝히고 구석구석 돌봐
중앙일보 | 권철암 | 입력 2014.05.01 00:48 | 수정 2014.05.01 08:08

세월호 침몰 희생자 가족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신분도 밝히지 않고 봉사활동만 했다. 30일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천안함 희생자 유족들이 그랬다.

 침몰 사고 15일째인 이날 오후 2시 진도실내체육관.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 28명이 관광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이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진도군 자원봉사센터가 나눠준 연두색 조끼를 입고 곧바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 있던 실종자 가족 50여 명에게는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충격이 큰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천안함 유가족들은 봉사활동에만 전념했다. 체육관에 흩어져 걸레로 의자와 바닥을 닦았다. 체육관 안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쓰레기도 말끔히 치웠다. 가족들에게 이날 저녁 식사를 나눠주고 빨래도 해줬다.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은 이날부터 3박4일 동안 이곳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봉사활동에 들어가기 전 유족 대표 이인옥(52)씨가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때 희생된 고 이용상 하사의 아버지다. 이씨는 "천안함 폭침 때 받은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시름에 잠겨 있는 우리에게 온 국민이 보내준 도움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천안함 폭침 1년 뒤에도 아들이 살아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실종자 가족의 마음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비록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겠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고통을 나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천안함 유가족들은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진도로 달려오려고 했다. "내 아들딸들이 죽는구나. 어떻게 또 이런 일이…"하며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가족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이씨를 주축으로 유족들은 "형식적인 방문만 하지 말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봉사활동을 계획했다. 일부 유가족은 생업을 중단하거나 휴가를 얻어 참여했다.

 천안함 유족들은 "지금은 차라리 울고 소리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누가 말만 걸어봐라'식으로 감정이 격해진 가족들에겐 여러 말보다는 묵묵히 곁을 지키고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보살피는 게 최선인 것 같다"고도 했다.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의 임시 거처는 이날도 침묵의 기다림이 이어졌다. 실내체육관은 사고 초기 600여 명이던 실종자 가족이 50여 명으로 줄었다. 실종된 아들딸의 사진을 꺼내 보거나 수색작업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시신의 신원이 확인돼 체육관을 떠나는 가족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김모(45)씨는 "이러다 시신마저 찾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 200여 명이 머물고 있는 팽목항의 분위기도 침울했다. 더딘 수색·구조에 항의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멍한 눈으로 바다를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어제도 오늘도 못 찾고 우리 아들 언제 꺼내 줄 거냐"며 엉엉 울었다.

 '다이빙벨'은 이날도 사용하지 못했다. 이날 오후 3시45분 세월호 뒤쪽에 투입했으나 28분 만에 꺼냈다. 바지선에 다이빙벨을 연결하는 줄과 잠수사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줄이 꼬였기 때문이다. 알파잠수종합기술공사 이종인 대표는 "이 과정에서 다이빙벨이 손상돼 긴급 수리했다"고 말했다.

 한편 민·관·군 합동구조단은 이날 시신 7구를 수습했다. 4층 선수 좌측에서 5명, 5층 로비에서 1명을 찾았다. 또 다른 1명은 사고 해역에서 2㎞가량 떨어진 곳에 설치된 오일펜스에서 발견했다. 구조단은 지금까지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64개 격실 중 44개를 수색했다. 또 유실됐을지도 모를 시신을 찾기 위해 사고 해역 반경 12㎞를 수색하고 있다. 이날까지 세월호 탑승객 476명 중 사고 희생자는 212명, 실종자는 90명이 됐다.

진도=권철암·최종권·고석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