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영의 회복적생활교육 이야기

힘을 공유하는 공동체

평화숲 2014. 5. 17. 08:36

박숙영의 회복적 생활교육 이야기

2014년 6월호-23

 

힘을 공유하는 공동체

 

불평등, 사회적 신분위계, 권위주의 사회체제는 모든 유형의 폭력을 자극하며, 그런 신념과 행동을 제거하고 집단 안에서 맡은 역할과 상관없이 모두가 모두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 관계로 바꾸는 것이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제임스 길리건

 

 

압력에 의한 질서와 정숙

 

아침 자습 시간에 복도를 지나다 보면, 학급 마다 다양한 풍경들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반, 연신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반, 교사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와글와글한 반까지 다양하다. 능력이 있는 교사의 학급은 시끌벅적하기보다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순종적인 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생들을 일사불란하게 질서를 지키도록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고, 교실에서 정숙한 태도를 갖도록 지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진짜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된 동기, 교실 안에서 정숙한 태도를 갖게 된 동기가 교육적이냐?’ 하는 것이다.

만약 학생들의 행동 동기가 ‘공동체에 대한 존중’이라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교육적 성과이며, 교육의 아름다운 열매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 학생들의 행동 동기는 ‘압력에 의한 순종’이다. 무서운 교사의 지시는 잘 따르지만, 무섭지 않은 교사의 지시는 따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이들의 이러한 행동 동기가 더욱 쉽게 드러난다.

지금의 학교와 학급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협력’이 아니라 ‘압력에 의한 순종’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압력에 의한 순종’은 지배구조를 만들어 내고,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주어진 교육환경 자체가 이미 지배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민주주의’를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교사는 학생들의 행동 수정을 위해 압력을 사용하는 생활지도의 방식이 교실에서 지배구조를 생산하게 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지배구조 집단 VS 힘을 공유하는 공동체

 

첫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이때의 교실은 마치 정글과 같다. 아이들은 모든 촉각을 동원해서 가까이 지낼 친구와 멀리할 친구를 가려낸다. 이때 중요한 기준은 ‘힘’이다. 아이들 사이의 힘겨루기는 3월 내내 진행되다가 4월이 되면 어느 정도 학급의 서열이 정해지면서 정리가 된다. 이때 아이들의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학급 카스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불평등한 관계에 의한 지배질서가 존재한다.

소수에게 힘이 집중되는 학교․학급 짱의 존재, 학교폭력이 발생해도 침묵하는 방관자, 약자에 대한 따돌림 등등이 교실 안에서의 지배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교실은 이 사회의 지배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은 축소판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힘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목표로 한다. 범죄 심리학을 연구해온 제임스 길리건의 말처럼 ‘모두 동등하게 존중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관계가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집단 (거짓 공동체)

공동체

․ 구성원들은 집단에 봉사하기 위해 개인적 욕구를 유보해야 한다.

․ 사회적 질서에 복종과 충성을 강조한다.

․ 집단의 일치를 중요시한다.

․ 급우들의 압력이 존재한다.

․ 목적은 ‘순응’이다.

․ 과정이나 가치보다는 결과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 학급의 풍토는 안정, 온정, 신뢰와 멀어져 있다.

․ 진정한 공동체에서의 개인은 소멸되지않는다.

․ 공동체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보호하고 신장시키며,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가치로 격려된다.

․ 진정한 공동체는 악전고투에서 발생한다.

․ 학생들은 쟁점에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격론, 논쟁, 야단법석, 격분이 진정한 공동체로 성장시킨다.

미국 교육학자인 알피 콘은 지배구조인 ‘집단’과 힘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알피 콘의 말처럼 진정한 공동체에서는 결코 개인이 소외되지 않으며, 일사불란한 일치를 보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논쟁과 격론들이 발생한다.

우리는 단순하게 ‘전체’가 먼저인가, ‘개인’이 먼저인가 라는 식의 이분법적 시각에 갇혀 있다. 하지만, 진정한 공동체는 개인과 공동체를 대립적인 관계로 보지 않으며, 개인과 공동체는 본성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공동체는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집단주의’와 공동체의 약속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개인주의’를 넘어선다.

 

진정한 공동체란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의미하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은 이렇다.

진정한 공동체란 생기 있는 공동체로써 개인의 필요가 공동체의 목적에 반영되고, 개인은 공동체의 약속을 존중한다. 개인의 필요가 반영된 공동체는 개인의 열정을 이끌어 내어 시너지가 발생되고 활기를 얻게 되고, 개인의 주관성은 공동체를 통해 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혜로 성장하게 된다.

진정한 공동체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장시킨다.

“건강한 공동체는 사람들이 참자아에 대한 의식을 확장하도록 돕는다. 공동체 안에서만 자아를 주고받고, 귀 기울이며 말하고, 존재하고 행동하는 자연스러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약해지고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지 않으면, 자아는 위축되고 우리 자신과의 접촉도 약해진다.”라고 말한 파커 파머의 지적처럼 개인은 공동체를 통해서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고,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진정한 공동체는 힘을 공유한다. 소수에게 힘이 집중되거나 소수의 압력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다. 힘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공유되며, 개인은 누군가로부터 비난 받을 걱정 없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공동체 모두의 목소리가 안전하게 소통될 수 있고, 자유롭게 소통되는 서로 다른 의견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게 되는 곳이다.

 

교실은 진리를 실험하는 공간이다.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자, 진리를 실천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학급은 진리의 공동체이다. 교실이 강압적인 힘이 작동되는 위계질서의 세계를 학습하게 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간디가 자신의 비폭력적 삶의 실천을 진리의 실험이라고 말한 것처럼, 교실은 힘의 공유와 구성간의 존중과 협력, 민주주의, 진정한 공동체와 같은 진리를 실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이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진리를 실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야 한다. 교사는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가 제시한 답은 문제의 수많은 답 중에 하나일 뿐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한 과정에 함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힘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실험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 중에 하나가 ‘서클 프로세스’다. ‘서클은 참여자들이 탁자 없이 둥글게 배치된 의자에 앉는다. 모인 사람들은 때때로 의미 있는 물건을 가운데 두고 참여자들의 공유된 가치와 공통점을 상기시켜줄 응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서클의 둥근 형태는 공유된 리더십, 동등함, 연결과 포옹을 상징하는 동시에 모든 참여자들로부터 오는 집중, 책임의식, 참여를 촉진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서클은 둥그렇게 앉아서 돌아가면서 말하는 구조이다. 서클은 안전한 공간에서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공동체에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힘’이 있다는 것이다. 서클에서의 돌아가면서 말하기는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힘을 자연스럽게 나누게 하며, 개인의 주관적 생각들이 공동체를 통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공동의 지혜로 발전하게 한다.

 

그러나 힘을 나누는 서클프로세스라는 도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함께 하는 리더십’이다. 교사가 압력을 사용하는 한, 어떠한 도구도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교사가 답을 알려주고 답에 맞게 통제하려고 하는 것을 내려놓고, ‘힘을 나누는’ 실험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