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원치 않는 걸 봐야하는 내 마음이 어땠겠어요."
아이히만이 예루살렘에서 열린 독일군 전범(戰犯)재판소에서 자신을 변호하며 한 말이다. 그가'원치 않는 건'가스실 혹은 총살형으로 죽어가는 유태인을 보는 일이다. 그의 묘한 논리는 스스로를 핍박하는 자에서 당하는 자로 바꾸어 놓았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10년 넘게 숨어 살던 그는 자신 스스로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1961년 재판에 회부되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길사.2006)은 그 내용에 대한 기록이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이며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다. 그녀는 독일인의 재판 과정을 민족과 개인의 입장을 떠나 인간 자체에 대한 시각으로 지켜보았다.
예부터 사람들은 선과 악은 구분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와를 유혹한 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아담을 타락시킨 하와. '지킬과 하이드', 나쁜 괴물을 물리치는 좋은 영웅, 영화와 만화 주인공만 해도 얼마나 알아보기 쉬웠던가. 이는 1970년대 반공 포스터에서 북한사람들을 늑대로 표현한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믿음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새로운 개념 앞에 무너졌다.
그녀가 집요하고도 담담하게 서술하는 얘기는 '악의 평범성'이다. 이 말은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가 된다. 또한 그 밑바탕에 있는 무지함이 죄의 근원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히만은 '그 당시의' 법에 충실했고 성실한 가장이었으며, 출세를 꿈꾸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너무나 충실한 그는 포로수용소로 보내기 위한 서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리했다. 이어 그들을 차곡차곡 기차에 실어 정중하게 가스실로 보냈다. 그는 이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처음엔 유태인들을 그들의 낙원(게토)로 보내는 거라는 이상적인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최종 목적지가 '죽음의 나라'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유태인들을 함부로 기차에 태우고 그 안에서 죽게 한 루마니아 정부를 비난했다. 비인격적인 대우라며 분개했다. 맹목적 충성을 부르는'사고의 부재', '생각의 무능성'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읽어낼 수 없다.
"나는 유대인들을 죽이는데 아무 관련이 없다. 나는 유대인이나 비유대인들을 결코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어떠한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단지 이송하라는 명령을 실행했을 뿐이다." 74쪽
이 주장은, "나는 유대인을 죽인 적이 없다. 단지 상관이 체포하라고 해서 데리고 왔을 뿐이다.", "나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단지 (명령대로)가스실의 버튼만을 눌렀을 뿐이다.", "나 또한 죄가 없다. 어차피 죽은 사람한테서 금니를 뺐을 뿐이다."로 이어질 것이다.
내용 중에,'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 이는 이들의 몸통인 수뇌부는 혹은 독재자는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가. 그들의 개인적 판단과 양심이 잘못되어 있더라도 단지 그들의 '신념'이라는 이유 하나로 인정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낳는다.
한나는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이 유태인을 옹호하거나 개인의 징벌에 있지 않음을.
"나는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모든 사람이 영웅적인 행위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함으로써 큰 피해를 주었다. 예를 들어 유태인이 유태인을 죽이는데 앞장서는 일이다. 때로는 아닌 일에 동참하지 않는 '묵인'자체가 최선일 수 있다. 이 또한 저항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사형을 언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인류의 공통적 맹점을 건드리는 화두로 연결되는 뇌관이었다.
역사는 질문한다.
"어떻게 살겠느냐? 무엇을 선택할 건가? 당신은 사고(思考)하는 자인가?"
신상진 시민기자 / book@book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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