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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선택의 가능성, 그 저주에 대하여 -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평화숲 2010. 2. 1. 23:01

 여기 멋진 신세계가 있다. "공유, 균등, 안정"이라는 표어를 내세우는 이 곳에서 아이들은 체격과 지능, 성격 등의 특성은 물론이고 직업과 취미, 적성도 인공적으로 미리 정해진 채로 태어난다. 예를 들어 열대 지방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될 태아에게는 일찌감치 수면병과 티푸스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 준다. 그리고 로켓 조종사가 될 태아에게는 회전력을 키워 줌으로써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도 행복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이처럼 철저한 인공 조작을 거쳐 대량 생산된 아이들은 성인이 된 뒤 이미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일을 하기만 하면 물질은 필요에 따라 충분히 공급받는다. 또 최첨단 과학 설비들의 도움으로 편리한 생활을 누리며, 성생활도 자유롭게 한다. 따라서 육체적 고통이나 물질적 근심, 걱정, 불만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고민이나 불안이 생기면 행복한 감정을 유지시키는 '소마'라는 알약을 먹으면 된다. 소마는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고, 돌아올 때도 골치 아픈 게 전혀 없는' 특효약이다.

 위는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의 모습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존이라는 남자는 신세계, 지도자인 총통 무스타파 몬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원한다는 말인가?"

긴 침묵 끝에 존은 대답한다.

"네, 저는 그 모든 권리를 요구합니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김혜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