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8
3월, 학급공동체의 공유된 목적 세우기
에피소드
우리 반은 지각을 하면 벌금 500원씩 낸다. 지각으로 낸 벌금은 학급비로 사용하기로 했다. 좋은 점은, 지각을 한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모아진 학급비로 학급 행사 때 맛있는 간식을 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지각한 아이들에게 내가 인상을 구겨가며 잔소리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500원이 아까워서 알아서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나는 사소한 일상의 마찰을 이렇게 해결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아이가 그렇게 규칙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전까지는….
○○녀석이 지각을 했다. 그리고, 벌금 500원을 외상했다. 그리고 또 지각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외상…. 그 녀석의 벌금은 지각과 함께 불기 시작해서 3만원까지 되었다. 그 녀석은 지각한 다른 아이들이 낸 돈으로 학급 간식을 맛있게 먹고도 자신의 밀린 벌금 3만원은 도통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학급 몇 명의 아이들이 볼멘 소리로 내게 불평을 한다. “아, ○○는 지각했는데도 벌금을 안내요~” 몇 번씩 학급규칙을 위해 벌금을 내도록 이야기했지만, 그 녀석은 말로는 낼 거라고 하고는 또 그만이다. 고3 졸업을 앞두고 정말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난처하다. 결국 나는 그 녀석의 벌금을 50%할인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으악, 이런 상황에서 나는 정말 교사가 아니라, 무슨 사채업자가 된 것처럼 생각 되어 절망스러웠다. 정말 너무 한다. 공동체 의식이란 찾아보기 힘든 이기적인 녀석이다. 다른 사람이 낸 벌금으로 간식을 맛있게 먹던 녀석이 너무 얄밉다.
1. 학기 초, 학급규칙 세우기
학년 초가 되면, 1년을 준비하면서 학급의 규칙을 만들게 된다. 이때, 규칙을 만드는 주체가 누구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 물론 답은 ‘학생’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아이들에게 스스로 학급규칙을 만들라고 하면 걱정되는 것이 많다. 자기들 좋은 대로 만들게 될까봐 아이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결국 교사가 개입하게 되고, 개입하다고 보면 날마다 그 규칙이 그 규칙이다. 시간도 부족한데, 차라리 교사가 꼭 지켜야 할 것들을 제시하고 별다른 이견이 없으면 통과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기 초 학급 규칙이 세워진다. 아이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학급 규칙에 대해 꼭 지켜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별로 없다. 다만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저 규칙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편하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처세술을 잠깐 고민해보는 것이다. 학교의 짠밥이 늘수록 고민의 시간은 줄어든다.
2. '공동체 VS 개인' NO ! , '공동체 With 개인' Yes !
학급을 운영하다 보면 공동체가 먼저냐, 개인이 먼저냐 고민이 될 때가 많다. 공동체를 너무 내세우면 전체주의가 될 것 같고, 개인을 너무 내세우면 공동체를 무시하는 이기주의가 될 것 같고… . 적어도 학급은 공동체니까, 개인의 이익은 공동체를 위해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개인의 꿈에 관심이 없는 공동체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Need가 반영되지 않는 공동체구조는 생기가 없다.’는 것이다.
생기있는 학급 공동체를 만들자. 그러기 위해, 학급 공동체의 공유된 목적과 학급 규칙을 세우는 과정에 시간과 관심과 에너지를 쏟기를 제안한다.
그러면,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어떻게 학급규칙으로 모아볼 수 있을까? 쉽지 않지만, 일단 아래에서 소개하는 [Need에 기반한 학급의 공유된 목적과 학급규칙 세우기] 과정을 따라 해보자. 이 과정에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공동체는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개인의 정서적인 내면의 경험에 의해서 더 잘 작동된다.
3. Need를 기반으로 한 학급의 공유된 목적과 학급 규칙 세우기
1) 학급의 공유된 목적과 학급 규칙 세우기에 대한 교사의 진정성 있는 의도 점검하기
무엇이든 진정성이 중요하다. 이 활동을 하려는 교사의 의도가 무엇인가. 아이들을 통제하고 교사의 말에 잘 순응하게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개개인에 대한 존중과 자율성을 위해, 서로의 배움과 성장에 기여하는 학급을 위해, 학급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교사로서의 성장과 배움을 위해…. 등등.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교사의 말이 아니라, 교사의 진정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아이들과 이 과정을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진행하기를 권한다.
2) 담임교사의 비젼과 의도 말하기
담임교사로서 교육과 학급공동체에 대한 비젼과 소망에 대해 모두가 볼 수 있게 칠판 또는 전지에 기록하거나, 개인 복사물로 만들어 나눠준다.
예시) 학급에 대한 기대 : 서로 돌보고 배려하는 평화로운 학급.
담임교사로서의 소망 :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기, 서로 다른 차이로 인한 재미와 풍요로움에 감사하기, 성공에 대해 겸손하고, 실패에서 배우기,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기, 따뜻한 관계 세우기….
3) 학생들은 1년 동안, 학급공동체 안에서의 자신의 기대와 열망을 표현한다.
학급 안에서 1년 동안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핵심 내용을 특정 단어로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말하도록 한다. 표현된 특정 단어들은 칠판이나 전지에 기록한다. ‘비폭력대화의 Needs목록표’를 참고하면 편하고 좋다. 이때 모든 사람의 기대와 열망이 모두에게 들려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천천히 진행한다.
예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친밀한 관계, 우정), 성적이 올랐으면 좋겠다(배움, 성장), 재미있고 즐거웠으면 좋겠다(재미, 여유, 즐거움), 서로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존중, 배려, 따뜻함, 수용…), 제시간에 종례가 끝났으면 좋겠다(예측가능성, 이해…)
4) 돌아가며 자기 표현을 한 후에, 칠판(또는 전지)에 표현되지 않은 다른 내용을 추가할 마음이 있는 물어본다. 추가되는 내용들은 기록을 한다.
5) 기록한 내용을 보며, 각자 자신에게 가장 영감을 준(또는 가슴에 와닿는) 표현 3개에 체크 표시를 하도록 한다. 한 사람당 서로 다른 세 개의 표현에 표시할 수 있고, 동일한 표현에 여러 번 표시할 수도 있다.
예시) ‘正’로 표시하거나 스티커를 3개씩 나누어 주어 단어 옆에 붙이도록 한다.
6) 많은 표시가 된 표현(또는 단어)을 모아서 다시 기록한다.
예시) 친밀한 관계, 협력, 따뜻함, 수용, 존중, 배려….
7) 각각 표현된 열망이나 기대가 이루어지기 위해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는 공동체에게 하고 싶은 제안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모둠 별로 진행하고, 내용을 취합하는 방식을 권한다. 취합한 내용은 다시 칠판이나 전지에 정리한다.
예시) 친밀한 관계 - 짝을 2주에 한번 씩 바꾸고, 한 번도 같이 앉아보지 못한 사람과 짝을 한다. 생일축하 시간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학급에서 회복적 대화모임을 개최한다….
※주의: ①‘~하지 않기’의 부정적 표현은 ‘~하기’의 긍정적 표현으로 바꾸기, ②실천되지 않았을 때 벌칙을 정하는 방식은 지양한다. 실천되지 않아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는 회복적 대화모임을 통해 풀 것을 권한다.
8) 모두 모아진 실천 방법과 공동체의 제안에 대한 동의과정을 진행한다.
여기에서 동의란 100% 동의라기 보다는 ‘참을 만하다’는 의미의 동의이다. 동의과정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동의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을 한다. 만약 누군가가 반대를 한다면, 그 이유를 들어보고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준다. 그리고 반대하는 항목과 그가 제시한 대안을 중재하여 결정한다. 이때 동의된 실천방법들은 곧 학급의 규칙이 된다.
9) 6)번으로 다시 돌아가서, 하나의 체크도 표시되지 않은 표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표시가 된 표현들을 선택하여 공유하는 목적의 초안을 작성한다. 이 작업은 한 사람이 할 수도 있고 여럿이 할 수도 있다. 문장을 합치는 대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전지 위에 문장을 적는다. 이때 완성된 문장이 바로 ‘학급의 공유된 목적’이 된다.
예시) 존중, 친밀한 관계, 배려, 재미, 배움…. →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우정을 쌓아가고, 재미있고 즐겁게 배우며 성장하는 우리”
10) ‘공유된 목적’과 ‘구체적 실천 방법(학급규칙)’을 전지에 기록하고 모두 함께 읽는다.
작성된 내용에 모두 마음이 움직여 “Yes!"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① 나의 마음에 와닿는 내용을 포함하고 ②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와닿는 내용이며, ③ 내 마음에 확끌리는 것이 아니어도, 그로 인해서 공유하는 목적이나 규칙에 대해 나의 노력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공유된 목적’과 ‘구체적 실천 방법’은 학급의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하고, 가끔 모두의 소중한 것을 다시 기억하기 위한 시간을 갖도록 한다.
결론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열정 ․ 기대와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학급의 목적과 규칙들은 아이들 각각 내면의 Need와 열정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학년 초 3월, 이를 위한 투자는 앞으로 함께 보낼 1년을 내다봐도 결코 아깝지 않은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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