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과 파종
- 어느 하나의 사랑, 어느 하나의 꿈,
어느 자아의 정점은 다음을
만들어내는 이름 없는 씨앗이다.
매장과 파종 사이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죽은 생명들을 영원히 잠재워야 새로운 생명들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연인이든 꿈이든 잘못된 인식 방식이든, 소멸된 것들은 이제 막 태동하려는 삶에 밑거름이 되어준다. 쓸모를 다한 것들이 대지와 하나 되듯 과거의 사랑은 새로운 사랑의 밑거름이 되고, 깨져버린 꿈은 아직도 잉태 중인 꿈의 밑거름이 되며, 우리를 세상에 묶어두는 고통스러운 존재방식은 이제 막 피어나려는 자유의 밑거름이 된다 .
우리가 평생 뒤집어썼던 다양한 모습의 자아를 생각할 때, 이런 사실은 위안이 된다. 하나의 자아가 쓸모를 다 할 때까지 우리를 지탱하다가 소멸되면, 우리는 한때 사랑했던 이 옷을 그것의 고향인 영혼의 땅으로 영원히 돌려보낸다. 그러면 이 옷은 우리를 내일로 데려다줄 또 다른 옷의 밑거름이 된다.
사라짐은 언제나 슬픔을 낳고, 태어남은 언제나 놀라움을 동반한다. 하지만 삶의 고통은 대부분 쓸모없어진 죽은 옷에 집착해서 그것을 영원히 파묻지 않거나, 소멸이 아닌 은폐를 목적으로 묻어버리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모든 새로운 존재방식의 뒤에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창조하려는 시행착오들이 있고, 새로 돋아나는 어린 가지에는 지하에서 힘을 북돋우는 오래된 뿌리가 있고, 새로이 싹트는 모든 기쁨에는 뿌리를 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신선한 순간들이 있다.
아무리 아끼는 것들도 끌어안고 살다가 영원히 작별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런 작별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소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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