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형태 판형 규격外 | 페이지 수 272 | ISBN
- 원제 : Why Forgive?
ISBN 10-1158090234
ISBN 13-9791158090234 - 정가
11,000원 9,900원
풀푸학교의 홍순명 선생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이라서 내게는 귀한 책이다.
읽어 내려가기 쉬워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사례 중심이어서 이해하기 쉬웠고, 용서의 의미가 이성적으로가 아닌 현실 삶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었다.
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가.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말로 들어왔던 '죄의 용서'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경험없이 주어진 수많은 배움들은 그렇게 내 삶 속에서 생동감있게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수많은 증언들에 의하면 '용서'는 나 자신이 분노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자유는 '용서'를 통해서 가능하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감옥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영혼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38쪽
'용서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가 늘 하신 말씀처럼 "모든 일은 배우기 전까지는 어렵다. 그러나 일단 배우고 나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 나는 배웠다. 거리의 형제 안젤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숱한 시간 동안 복수심에 불터올랐던 나를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까봐 두려운 것이리라. 다시는 비슷한 학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이 가해자들의 잘못과 책임을 덮어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또한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히틀러 같은 사람에게 누가 면죄부를 줄 수 있겠는가? 용서는 책임을 면제해주는 행위도 아니고 어떤 사람의 행동이 도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C.S.루이스는 1947년에 ㅆ느 글에서 '용서와 변명은 천지 차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을 저질렀을 때 책임을 지기 싫어서 변명하기 마련이다.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나치가 몰락하자 용서를 구하는 대신 자신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음을 알아주길 바란는 마음으로 한 말이다. 그러나 C.S.루이스는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에게 잘못이 없다면, 용서할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와 변명은 정반대나 다름없다.".
진정한 용서는 죄를 차분하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한 변명도 하지 않고 자기가 한 일을 인정하고, 죄의 참상과 비열함, 야비함과 악의를 모두 직시한 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저지른 살마과 완전히 화해나는 것이다. 이것이, 오직 이것만이 용서다. ' - 87쪽
마음에 증오를 품고 있는 한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거 잘 압니다. 분노가 이글거리는 원한에 찬 마음으로 어떻게 온전한 인간이 되겠습니까. 분노와 원한과 같은 감정은 결국 우리의 삶을 결정하지요. 특히 짐승 취급을 당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은 사람ㅇ느 자신을 무너뜨리는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야만 치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공허한 마음을 채울 다른 무엇을 찾아야 합닏. 온전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 거죠.
저는 1998년 제 생일에 그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30년만에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고, 몇 달 후에는 그림을 그릭 시작햇고, 그 다음에는 소설을 썼습닏. 마침내 인간성을 회복하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이제는 미소 짓고, 소리 내서 웃고, 삶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웃음과 미소를 안겨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양원과 양로원에서 노래하곤 합니다. 쉬지 않고 정의를 쫒은 끝에, 기도와 묵상을 통해 여기까지 온 겁니다. 89쪽
매년 수천명에 달하는 유색인종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괴로워하지만, 모두가 로베르토처럼 정의를 경험할 만큼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대개는 정의가 이뤄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박해자들을 용서해야 하는 걸까? 로베르토는 자기뿐 아니라 모두를 위해 꼭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학대 행위가 매해 그치지 않기 때문에 미국 거리에 반감이 넘치는 겁니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거나 억울하게 감옥게 갇힌 사람들의 경에는 특히 더하지요. 어떤 사람은 반쯤 죽은 것처럼 무기력해지고, 어떤 사람은 증오에 가득 차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 됩니다. 그러다 정말 폭발하기도 하죠. 1992년 로드니 킹 사건 판결이 나온 직추에 터진 로스엔젤레스 폭동을 보십시오. 그러나 애통하게도 대신 복수를 해주겠다고 거리로 나선 사람드링 저지르는 폭력행위로 정작 상처를 입은 이들은 억울한 일을 당한 당사자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입니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이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의 비극이라는 겁니다. 걷잡을 수 없는 질병과도 같지요. 치유는 말할 것도 없고 용서 역시 사치스렁ㄴ 꿈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거대한 사회적 불의가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은 사람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사과를 기다리지 말고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용서에 꼭 사과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팔짱을 끼고 유쾌하게 집에 돌아가서 끊이지 않는 사회적 불의를 잊어버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분노나 증오, 앙심을 품지 않고도 자신이 빼앗긴 인간의 품위와 권리를 되찾는 투쟁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을 짐승취급한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는 사실 용서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고문하거나 살해하는 등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비슷한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도우려면 용서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들에게는 치료가 필요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악마를 몰아내지 않는 한, 가해자는 절대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없습니다. 90쪽
용서가 면죄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노와 증오의 마음을 복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증오와 분노에서 벗어나 나의 인간성회복하고 회복된 인간성으로 사회문제를 풀자는 것이다. 그리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가해자들은 치료가 필요하다.
용서는 책임을 면제하는 것과는 다르다. 가해자에게는 여전히 마이클을 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이 있지만, 이 불행한 사건에서 벗어나려면 용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겁니다. 아무리 무거운 벌을 내려도 앙갚음이 되지는 않으나, 앙갚음하지 말고 무조건 용서해야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용서하는 과정에 가해자가 꼭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 소년이 무슨 짓을 저질렀건 상관없이 제가 바뀌어야만 '끝'에 이를 수 있었던 겁니다. ....
우리가 바라는 사건의 '끝'은 결국 용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용서의 힘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고, 용서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
희생자의 권리를 누구도 반발할 수 없는 정당한 권리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에서 빌의 통찰은 지지를 받기 어렵다. 법정의 판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직접 응징에 참여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희생자 가족에게 사형 집행을 참관할 기회를 주고 판결문에 발언을 넣을 기회를 주기도 한다. 1998년 오리건 주 스프링필드에서 총을 난사한 킵 킨켈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 법정에서는 강한 분노를 표출한 피해자 가족들을 재판장이 법정에서 내보낸 일도 있다. 한 희생자의 어머니가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가해자도 평생 같은 방식으로 고통당해야 한다고 말해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그것만이 제게 최고의 정의입니다."
이러한 요구가 타당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조치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슬픔에 눈이 멀어서 가해자도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복수로 위안을 얻으려고 하지만, 복수는 손톱만큼의 위로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복수로는 치유를 경험할 수 없다. 오히려 깊은 번민과 환멸에 빠질 뿐이다. 95쪽
나는 성경에서 도피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도피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무한 자비의 공간으로 도피성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 말에 대해 나 스스로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무한 자비의 공간으로써 도피성이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은 그곳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조금씩 내 말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도피성... 복수와 증오의 마음으로 훼손된 인간성으로는 어떠한 것도 회복할 수 없다. 폭력의 반복과 증오의 반복만을 가져올 뿐이다. 도피성.. 그곳은 누구의 죄를 묻기 이전에 복수와 증오를 내려놓고 본연의 인간성 속에서 서로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고 책임을 진다. 복수와 환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회복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용서와 책임지기..
도피성이 왜 필요한가.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왜곡된 마음과 훼손된 마음으로 사실을 볼 수 없기에, 그 모든 상처를 내려놓고 서로를 바라보고 정의를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피성이 필요하다. 그곳은 모든 것이 멈춘 곳이다. 있는 사실만 바라보고, 온전한 인간성으로 합의하고 화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곳이다. 시야를 가리는 모든 것을 물리치고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거다. 용서는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용서는 면제부를 주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한다. 용서와 면제부를 구분해야 한다. 용서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것이고, 면제부는 죄없음이라는 뜻인데 죄없다면 용서할 일도 없지 않은가. .
우리 사회에 왜 도피성이 필요한가. .. 이 생각을 좀 더 정리해보아야 겠다.
죄를 저지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죠. 하지만 벌만 주고 회복시키지 않는 건 더 큰 죄예요. 만약 벌하시는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할 양이면, 회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함께 받아드려야죠. 102쪽
끔찍했던 그 일도 끝내 저의 인생을 망치지 못했고, 이제 우리 사이에는 앙금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08쪽
사실, 제가 그를 용서한 이유는 아주 현실적이에요.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흔히 복수와 용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수를 선택하면 분노하는 데 삶이 다 소진되고 맙니다. 복수는 일단 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력이 있으니까요. 분노는 만족을 원하고, 그것은 곧 상습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주죠.
용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용서는 선물이고 자비에요. 선물을 주고 받는 것과 같습니다. 주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 충만한 만족을 주지요. 109쪽
용서가 필요한 이유는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먼저 문을 열지 않으면, 꼼짝없이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살아야 한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는 용서 뿐이다. 혹시라도 가해자가 어둠 속에 머물기를 고집한다고 해서 용서를 망설여서는 안된다. 163쪽
용서가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저 순간적으로 마음이 움직였다가 예전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무 가치가 없다. 용서는 선물이고 여기에는 어떠한 조건도 붙지 않는다. 그러나 용서로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201쪽
죄를 고백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잘못을 시인하고 반복하지만 않으면 죄책감은 쉽게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잘못을 시인하는 즉시 죄책감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톨스토이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용서해서 얻은 마음의 평화는 '영혼의 죽음'에 다름아니라고 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진정한 평화와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죄책감은 은밀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밖에 꺼내놓으면 힘을 잃는다. 그런데 의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게 우리를 가로막곤한다. '어리석은 선택이나 멍청한 실수를 꼭 드러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 할 수록 괴로움은 더 심해진다. 그러면 죄책감이 더해지고, 우리는 결국 죄책감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한다. 203쪽
영혼의 괴로움이 얼마나 심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죄와 책임을 인정하는 마이클 같은 사람은 설득이나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시인하는 사람보다 구원을 얻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죽는 날까지 용서받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용서의 능력이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를 희망하고 그럴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가 필사적으로 용서받기를 열망하고, 용서를 받을 자격을 갖추기로 결심했다면 말이다. 208쪽
용서에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용서 안에 개인의 삶을 넘어 더 폭넓은 차원의 변화을 이끌어 낼 힘이 있다는 것이다. 한 개인 안에서 시작된 변화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파문이 점점 넓게 퍼져나가듯 한 사람에게서 다음 사람에게로 퍼져나간다. 209쪽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는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으니까요. 만약 복수심을 안고 살았다면, 영혼의 상처는 더 깊어졌을 겁니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더 아프게 했겠지요. 육체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영혼이 상처받는 것만은 막고 싶었습니다. 219쪽
폭력의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키죠. 각 사람과 각 집단에 자기만의 적이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적'이 실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이 있다고 해도 이미 죽어버린 후인 경우가 많고요. 제가 매일 대면하는 진짜 적은 따로 있습니다. 매일 끌어안고 다니는 분노와 원통함, 밤마다 끌어안고 자는 두려움과 불안이 진짜 저의 적입니다.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여전히 갇혀 있습니다. 두려움과 증오심, 불신, 의심, 복수심에 사로잡힌 채 살아갑니다. 아직도 학교에서는 1994년의 대학살을 부른 반목과 분노, 인종차별 이론을 아무렇지 않게 가르칩니다. .... 하룻밤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용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니까요.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그렇게 힘든 과정을 굳이 왜 겪어야 하는지 직접 보고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감화를 받아야 합니다. 희망을 얻으려면 용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직접 보아야 합니다. 250쪽
사과로 첫발을 떼지 않으면, 용서는 물론이고 대화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지구상의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를 존중하도록 가르치고 모든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며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돕는다. 과거에 원수였던 사람들의 각자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모든 사람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도와준다. 261쪽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열광하면서도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현대 사회에서 집단 학살로 산산조각 난 마을을 개건하고 길고 힘겨운 여정이 뉴스 매체에 소개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오랫동안 '폭력의 고리 끊기' 프로그램을 추진해온 나의 경험에 따르면, 비폭력을 주제로 한 강연이 기자들의 눈길을 끄는 경우는 별로 없다. ... 도로시 데이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없애야할 장애물은 다른 사람이나 단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낙담과 자괴감이라고 했다.
지난 11월 14일 프랑스 파리에 이루어진 IS의 폭력 테러 이후, 한 희생자의 남편은 IS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들에게 분노를 선물하지 않겠다.."라는 내용이다. IS가 원하는 것은 분노로 무너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분노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내용에는 용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동일한 방법인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겠다고 한 그에게 많은 감명을 받았지만, 그 밑에 용서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사건이 일어난지 이틀 만에 어떻게 용서가 가능했을까. 불가능하다. 여튼 그의 편지글은 폭력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평화는 무력을 통해 오지 않는다. 평화는 평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의는 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 세상에 더 많은 도피성이 필요하다. 어떠한 사회적 잣대가 작동하지 않고, 오직 존재와 존재로 만나는 것이 가능한 장소, 그곳이 도피성이 아닐까 싶다. 그곳은 인간적은 법률도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 본연의 것만 작동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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