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 가운데 월터스토프는 세 가지 문제를 들어 논의한다. 첫째가 빈곤의 문제이고, 두번째가 민족주의의 문제이고, 세번째가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도시의 문제다. 오늘날 세계가 경험하는 빈곤의 문제가 단순히 개별국가의 문제거나 그 안에 거주하는 개인이나 가족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근대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임을 월터스토프는 논증한다. 아프리카 대륙이나 아시아는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해 식민지 통치를 받기 전에는 지금처럼 가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 문제도 근대 서구에서 출현한 낭만주의의 산물임을 밝힌다. "각 민족에게는 각 민족 고유의 땅을"이라는 표어가 19세기에 일어난 시오니즘, 20세기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 남아프리카의 인종 분리 정책 등의 배후가 되었음을 월터스토프는 논증한다. 오늘 도시의 황폐한 삶의 환경 배후에는 근대에 도입된 농업 자본주의가 배후에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평화는 단순히 적대 관계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자연 그리고 나와 더불어 관계가 정상화되고 그 안에서 번영하고 번창하며 기쁨과 환희가 있는 상태다. 평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공평해야 하고, 무엇보다 약자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평화 없이는 정의는 수립될 수 있어도 정의 없이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고 월터스토프는 보고 있다.
- 오늘의 세계의 비극은 몇 몇 중심 국가들이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한 결과로 초래된 것임을 드러낸다.
-좌파 이론가들이 선호하는 세계체제론을 월터스토프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는 그의 '카이퍼리안'적인 배경이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에 따르면 이른바 '사회 문제'는 사회의 근간이 되는 구조나 체제를 문제삼을 때 비로소 문제로서 등장하낟. 이를 일컬어 카이퍼는 '건축술적 비판'이라 불렀다. '체제비판', '구조비판'이라 하면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카이퍼가 뜻한 것은 예컨대 가난의 문제를 접근할 때 단지 어떻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것인가, 어떻게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줄 것인가 하는 표면적인 물음보다 가난이 발생한 사회 구조와 사회 체제를 문제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로교는 교회 개혁 전통 가운데 칼뱅의 개혁 운동에 뿌리박고 있음에도 사실 한국 장로교는 칼뱅 신학을 데대로 모르고 있다. 이 책은 칼뱅의 모습을 다시 발견한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 경건과 더불어 '사회적 경건'을 강조한 모습이라든지, 권력자의 폭력과 가난한 자의 착취에 대한 강한 반발, 금욕주의자라기보다는 삶의 미적 측면에 대한 관심 등 흔히 간과해 온 칼뱅 신학의 모습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 예배에서는 말씀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예배의 필수 부분인 성찬이 배제되거나 무시된 것에 대해 월터스토프는 한탄한다. 성찬은 그로 인해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물질, 인간과 인간이 서로 교제하고 소통하는 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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