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19
학급을 평화로운 공동체로!
최경희(광명 서면초)
요즘 과도해진 개인주의 성향과 공동체의 무너짐으로 학급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학생인권을 외치며 교사의 존재를 위압하는 분위기 속에서 갈 곳 없는 막따른 지경위에 처해진 느낌이다. 과거에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란 말이 있었지만 요즘은 학교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부형조차 가세하여 교사의 자질을 논하는 형편에 처해져 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란 고민 속에 당연히 학생 네가 떠드니깐 잘못한 것이고, 네가 싸움을 해서 잘못한 일인데 왜 나한테 어쩌란 말이냐의 억울함과 분노가 있었다. 학생에 대해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입장과 그러면서 참교사의 자질을 요구하는 입장사이에서 학부모에 대한 원망도 없지 않았다. 나는 계속적인 ”정의“를 찾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원치가 않은 느낌이었다.
‘ 무엇이 문제일까?, 교사인 나와 학생 모두가 윈윈하는 방식이 가능한 것 일까? ’
학교에선 갈등의 연속이다. 특히 “축구 잘하는 짱”, “폭력을 쓸 줄 아는 짱”, “끼와 반사회적인 문화를 즐기는 짱”, “은근히 반항적인 짱“이 학급 문화를 주도해 가는 흐름에서 이것이 ‘좋은 가치다’라고 말하는 ”좋은“, ”바람직한“이라고 하는 용어자체가 학생들에게 힘을 잃은지 오랜 느낌이다. 작년 우리 학급에서 그렇게도 무언의 압박과 힘자랑, 모든 아이들에게 독주했던 그 학생한테 줄 수 있었던 우리의 책임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어떤 처벌, 이야기도 그 친구에게 가벼운 선에서 끝났고 모두가 묵인하고 있는 그 문화를 인정해야 함이 계속 답답함으로 눌렀다. 삐뚤어진 학급문화에서 학교폭력이란 어쩜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사실상 “평화”라는 가치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상대의 슬픔이 나의 기쁨’이 아닌, 상대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는 공감 문화
성적, 질서라는 세상의 기준 속에서 인간성을 배제시키지 않는 학급 문화
서로에게 진심으로 영향력을 나누어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에 대한 의문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갈등사례를 회복적 대화모임으로 풀기
사례 1) A학생은 이혼한 어머니한테서 양육받고 있고 1학기부터 수업 5,6교시를 자주 빼먹은 적이 있고 교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는 적이 많은 학생인데 B학생은 전교에서 은따 정도로 분류되는 여학생이다. 수시로 A학생은 B학생에게 욕을 하고 복도에서 부딪히며 몸을 살짝 치고 가고 B학생의 책상에 욕설을 크게 써놓는 등 장난삼아 많이 건드렸던 것 같다.
B학생이 상담을 요청했고 A와 B학생 둘을 놓고 회복적 대화모임을 진행했다. A학생은 생각보다 진솔하게 이야기했고 B학생은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울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A학생은 다소 진지해졌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의 말을 했다. 그 후부터 A학생은 B학생을 괴롭히지 않았다. 나는 A학생의 바뀐 태도에서 나자신도 모르는 A학생에 대한 깊은 선입관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례 2) A학생은 교사와도 갈등이 많았다. 뻔한 거짓말, 나머지 안하고, 임원이지만 전교어린이회 참석하지 않고 5, 6교시 수업을 5-6번 정도 빠지는 등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엉뚱한 말을 잘 하는 학생이었다. 어머니 또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삶이 바쁘고 교사에 대한 불신 등으로 대화가 쉽지 않았다. 학생이 5학년 때는 잘 지내왔다는 것이다. 학생이 교묘하게 거짓말을 많이 하는 편이고 어머니가 통솔력이 없고 아이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전형적인 과잉보호가 많이 보였다.
고민한 끝에 어머니, A학생, 나 이렇게 해서 3자 대화모임을 가졌다. 비폭력 대화와 감정코칭에서 말한 대로 학생의 감정을 존중하는 대화기법으로 모임을 진행하였고 학생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어머니는 학생의 눈마주침을 못하는 것과 돌려서 살짝 거짓말하는 습관 등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 후에 어머니와 단둘이서 면담할 때 교사에 대한 오해와 현재 A학생의 문제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대화모임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정말 나쁜 사람은 없구나!, 학교에서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상담이었다.
사례 3) C학생은 여름방학을 계기로 유행하는 옷을 사고 화장을 하게 되고 중학교 선배들을 만나게 되고 등 2학기에 많은 변화를 하면서 반여학생들에게서 따를 당하게 되고 결석을 3일 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 상황이다. C학생의 요청으로 회복적 대화 모임을 열고 관계된 여학생 4명이 모였다. 모두에게 발언건이 주어지고 들었던 내용을 경청해서 다시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C학생은 본인이 왜 따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학생들도 C학생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모임이 끝난 후 학생들은 “후련하다, 시원하다, 기분이 좋다, 오해가 풀렸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후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진 못했지만 최소한 서로에 대한 오해가 계속 쌓이고 뒷담하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문제들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서로에 대한 감정들,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나누었었던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교사 내면 들여다보기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기울였으리라”
사례 1) 얼마 전 아들이 아끼는 레고가 베란다에 멋지게 완성되어 있었는데 할머니가 청소를 해서 레고가 무너졌던 것이다. 정말 엉엉 울면서 짜증을 내는데 나는 이 순간이 항상 불안하고 참기 힘든 순간이다. 속마음으론 ‘다시 만들면 되지 할머니가 물이 들어와서 닦으려고 하신건데 그만 좀 해라’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순간 참고 어떻게 말하지 생각했다.
그리고 돌려주기 방식으로 “네가 레고가 무너져서 정말 화나고 속상하고 좌절스럽다는 거지.” 하면서 아이가 말하는 것을 똑같이 말하면서 돌려주기를 몇차례 했다. 아이가 조금 가라앉는 듯 했고 “엄마가 어떻게 도와줄까?” 물었더니 “통제구역 푯말을 붙여 누구도 못들어가게 할 꺼예요. ”라고는 3가지 정도를 제안했다. 그래서 문방구를 가서 “통제구역”을 사서 붙였는데 참 기분이 묘하고도 기뻤다. 훈계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구나! 그것도 참 창의적인 방식으로.... 새삼 아이를 믿지 못했던 나자신을 보게 되었고 ‘말의 위력으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구나’를 새삼 느꼈다.
사례 2) 수업시간 이었고 칠판에 쓰고 있었다. D학생은 제일 앞자리에 앉았는데 뒤돌아보며 떠들었다. 그 학생들 보는 순간 ‘제 또 그러네. 앞자리에 앉아서까지도 떠드네’ 화가 올라왔다. 그런데 불현듯 그 아이 얼굴을 보는데 ‘내가 왜 저 아이를 싫어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이가 수업시간 떠들었고 아이가 잘못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아이를 안좋아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는 안좋아했다. 왜냐하면 늘 그렇게 행동을 했으니깐. 전엔 이런 일은 당연한 거였고 생각해 볼 여지도 없는 일이었다. 당연하니깐... 근데 좀 달랐다. 내가 안좋아하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그 선입관이 강해서 그 눈으로 그 아이를 보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익숙한 선입관에 의해 학생들을 보고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객관의 상황이 아니라 상당히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그 아이한테 크게 혼내는 상황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을 말없이 넘겼던 것 같다. 잠시 몇 분 동안의 일이었지만 내 안의 큰 성찰로 남았었고 그로부터 그 아이든, 다른 사람에게도 선입관,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에 대해 생각을 자주 해 본다.
축하 및 애도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가 과정을 1년동안 거치면서 나의 삶에 큰 힘, 지지가 되었다. 어떻게 교육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 어떤 교사로 있어야 할 것 인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주었고 함께 나누었던 선생님들과 힐링, 비전을 보는 시간이었다. 학교를 새로 옯겨 적응해야 했고 담임과 부장을 겸하면서 과부하의 업무량에 시달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적으로 반학생들과 많은 공유는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학생들에 대한 자리가 있었고 끝까지 학생들을 볼려고 노력했던 일들이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현실의 학교가 업무량이 많고 쫓기지만 결코 업무량이 많다고 마음이 다 바쁘진 않는 것 같다.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도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내 안에 있었다. 그 “여유”가 삶을, 교육을 풍요롭게 하는 열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가진 옳다는 기준을 내려놓고 학생을 보기 시작했다. 학생의 미흡한 작품은 사실은 “대충”이 아니라 “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학생들과의 말하는 습관에서 강요, 질책, 핀잔 등으로 학생을 누르는 말이 더 많고 학급을 통솔하기 쉬운 방식, 내 몸이 선호하는 방식을 따라가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기준으로 학생을 판단하는 작업을 멈추진 않고 있지만 학생을 “존중”하는 방식의 대화와 서로 “힘 나누기” 방식의 학급형태가 미래의 소통과 지금의 위기의 학교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싶다.
어려운 일이고 안되는 일 같아 보이지만 존중의 대화들이 많아질 때 진정으로 평화로운, 행복한 학급문화가 창조될 것은 분명 맞는 일이리라. 그래서 갈등을 긍정적으로 보고 교육의 기회로 삼으며 “낙인찍기”, “힘겨루기” 등을 주의깊게 보면서 갈등과 마음을 드러내고 읽어주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 볼 것이며 비폭력 대화법을 학생들에게 제공하여 본인의 말로써, 본인을 시원케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음을 마음깊이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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