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존 폴 레더락의 ‘갈등전환’
삶이 갈등을 만들고 갈등이 삶을 만든다.
-존 폴 레더락
평화란 갈등의 부재?
“아이들과 친밀하게 가깝게 지내고 싶은 담임의 성향 탓에 아이들은 담임을 무섭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은 좋은데 그러다 보니 질서가 없다. 종례시간에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거나 선생님의 지시사항에 고분고분 따라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기주장이 세고 불만도 많아서 티걱 태걱하는 일들이 많다. 그에 비해 옆 반 동료교사는 매우 카리스마가 있다. 담임교사가 한마디만 하면 아이들은 군소리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한다. 그래서 그 반은 늘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런데 옆 반 교사는 아이들이 자신을 무서워하여 다가오지 않는다고 고민스러워한다. 그래도 무섭게 해서 아이들이 말 잘 듣도록 하는 것이 더 났지 않을까? 학급에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한 숨만 나고 짜증이 난다.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평화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평화란 폭력이나 갈등이 없는 상태라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갈등이 없는 곳이 진정 평화로운 곳인가? 갈등이 없는 곳은 어떤 곳인가? 권위적이거나 위계질서가 중시되는 사회는 갈등이 억압되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갈등이 억압되어 있는 곳은 조용할지 모르지만 정의롭지는 않다. 국제분쟁조정가 존 폴 레더락은 “진정한 평화는 정의와 함께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듯이, 단순히 갈등의 부재가 평화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사가 엄격하고 무서우면 교실은 갈등이 잘 드러나지 않아 조용한 편이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문제를 제때에 알아차리지 못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거나 곪게 된다. 반면에 허용적인 교사의 학급은 갈등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드러난 갈등을 방치하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교사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통제력을 잃고 학급은 혼란에 빠지고 무질서해진다.
그렇다면,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갈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갈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 존 폴 레더락의 입장을 살펴보려고 한다.
[갈등에 대한 이해]
우리는 흔히 갈등이 발생하면 마음이 위축되고 두렵고 분노하고 고통스럽다. 마음의 고통은 곧 신체에도 영향을 주어서 머리가 아프거나 몸에 피로감과 통증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갈등을 마주치게 되면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러한 경험들로 인해 우리는 갈등을 부정적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갈등에 대한 부정이나 도피 또는 공격적 반응은 갈등 대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존 폴 레더락은 갈등 이해를 위한 다음과 같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째, 갈등은 변화의 동력이다.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변화의 동력이라고 여긴다면, 갈등에 대해 더 담대한 태도로 마주 대할 수 있으며,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하나의 기회로 보고 갈등을 환영하게 된다.
[갈등을 다루기 위한 질문]
존 폴 레더락은 갈등을 다루기 전에 고민해야 할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한다.
첫째, 폭력은 최소화하고 정의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둘째, 개인 간의 건설적이고 직접적인 상호소통을 하면서 동시에 시스템과 구조의 변화를 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폭력의 최소화와 정의의 극대화’, ‘직접적인 상호소통과 구조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갈등을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히 갈등이 사라지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과정을 통해 평화뿐 만 아니라 정의도 회복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갈등해결에서 갈등전환으로]
갈등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빨리 해결책을 찾으려고 급급할 때가 많다. 여기에서 갈등 해결은 드러난 문제의 종식을 의미한다. 당장의 문제가 해결이 되면 당장은 후련하고 안심이 되겠지만, 갈등의 이면에 있는 다양한 원인과 근본적인 문제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방치되어 진정한 평화와 정의 회복은 어렵게 된다.
존 폴 레더락은 갈등해결이 아닌 갈등전환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등해결은 해답을 찾는 데 집중한다면 갈등전환은 변화를 지향하도록 유도한다.
-갈등해결은 ‘표출된 문제’를 해결하지만, 갈등전환은 ‘표출된 문제’와 그 문제를 만들어낸 ‘관계 패턴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탐구하며 해결방안을 찾게 한다.
-갈등해결은 갈등을 완화하려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려 하지만, 갈등전환은 갈등 완화와 해결뿐만 아니라 갈등을 통해서 건설적인 변화를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까지 고려한다.
-갈등전환은 특정 문제의 해결보다는 갈등의 진원지를 찾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결과적으로 갈등전환은 단순한 문제종식이 아닌, 갈등을 유발하고 유지시키는 관계패턴과 사회적 구조와 문화를 이해하고 시스템과 문화의 변화를 추구한다.
[갈등과 변화]
갈등전환은 ‘변화’를 추구한다. 존 폴 레더락은 네 가지 범위에서의 변화 축을 제시한다.
첫째, 개인적 차원
갈등은 개인에게 인지적, 감정적, 지각적, 영적 영역까지 영향을 미친다. 갈등을 통해 인격체인 개인의 신체적 ‧ 감정적 ‧ 영적 단계의 성장 잠재력을 최대화한다.
둘째, 관계적 차원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패턴을 직시하게 한다. 어떻게 권력을 만들고 나누는지, 어떻게 서로의 기대를 인식하는지, 관계적 정서에서부터 권력관계, 개인의 독립성까지 고려하게 한다. 그래서 건설적인 의사소통의 최대화와 상호 간의 이해를 최대화하도록 개입한다.
셋째, 구조적 차원
갈등이 사회적 구조, 조직, 기관들을 어떻게 만들고, 유지시키고 변화시키는지 관심을 기울인다. 갈등을 통해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발견하고, 이를 충족시켜줄 자원을 찾아 연결해주고, 그룹과 공동체와 사회전체에 영향을 끼치도록 의사결정을 하도록 사회 ‧ 경제 ‧ 정치 ‧ 제도적 관계를 세우고 조직해가도록 한다.
넷째, 문화적 차원
갈등을 만들어내는 문화패턴을 이해하고, 갈등을 통해 생산적인 변화가 일어나도록 집단의 문화 속에서 갈등전환을 위한 자원과 구조를 찾아내고, 이를 촉진하고 만들어간다.
혁주 이야기
혁주(중2)를 처음 만난 것은 학교폭력으로 신고 된 사안을 회복적 서클로 다루려고 하는 과정에서였다. 혁주는 심한 장난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만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엔 3년 동안의 괴롭힘으로 참다못해 피해자가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겠다고 나서게 된 것이다. 학교의 제안으로 회복적서클을 열게 되었는데, 혁주는 회복적서클이 있는 날에 나타나지 않았다. 혁주어머니만 참석해서 아이를 대변했을 뿐이다. 피해자가 혁주가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분개하고 문제삼았다. 고통스럽고 곤혹스러운 4시간의 대화모임이 진행되었다. 혁주가 오지 않은 일로 인해 이 모임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피해학생을 학교에서 만났을 때,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피해학생은 언제 그랬냐싶게 건강하게 잘 지냈다. 특별히 피해학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화했었는데 4시간의 대화모임을 통해 피해학생의 내면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혁주의 이야기다. 혁주와의 대화를 위해 여러 번 시도했지만, 줄곧 나만 보면 도망쳤다. 그러던 혁주는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회복적서클을 제안해 왔다. 그리고 그 후에도 두 번, 세 번 찾아와서 회복적서클을 요청해서 자신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더니 같은 반 친구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학기동안 혁주 반은 나의 주 고객이 되었다. 학기를 마칠 쯤에 담임선생님의 고백은 나를 감동시켰다.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어느 순간에 친구들이 싸우면 중간에 한 명이 끼어서 중재를 하는 거예요….”
1년 동안 혁주와 그 학급의 변화는 놀라왔다. 분명 아이들은 자신의 갈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평화적으로 다루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내면의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내면의 변화는 태도의 변화와 타인과의 관계패턴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서서히 학급의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간혹 회복적서클을 진행하면서 “이번엔 잘 안된 것 같아.”라고 맥빠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회복적서클에서 다루었던 갈등의 회오리는 예상치 않게 평화적으로 방향을 틀어서 전환이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당장의 문제해결에 조급해 했던 내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갈등은 인간 삶의 일상이고 변화의 동력이며, 갈등은 해결이 아니라 전환이다. 이것을 기억하며 갈등을 직면했을 때 당장의 문제에 조급해하기 보다는 갈등의 맥락과 흐름이 시야에 펼쳐지면서 평화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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