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질문에 비춰진 교육현실]
“길을 잃은 교사들, 어떻게 마음을 열까?”
박숙영
(사)좋은교사운동 산하, 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 대표
위기의 교육현장, 단절의 고통의 대안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을 선택하다.
올해로 나는 교사생활 21년이 된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초임 시절에 교직에 많은 꿈들이 있었고 꿈꾸는 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진함과 용기가 있어서 교직의 행복과 성취감을 경험했다. 그러나 미흡한 행정업무 처리와 미숙한 수업으로 힘이 들었다. 교직의 어려움은 경험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5년 10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교직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었다. 나이가 들고 아줌마가 되면서 그 자체로 아이들의 호감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경험들이 많아지면서 학생들을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과 판단도 많아졌다. 경험은 나를 복잡한 업무로부터 해방시켰지만, 경험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교육 방정식은 “교사의 헌신과 열정은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였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시도했다. 그리고 나의 헌신에 대한 대가로 아이들에게 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헌신은 나 자신을 고갈시키고 있었다. 내 자신이 점점 고갈되고 공허해져갈 때, 갑작스런 병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왔다. 6개월간 병 휴직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 만난 것이 비폭력대화였다. 비폭력대화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보게 되었고 그러한 희망이 나를 이끌고 간 곳이 ‘회복적 정의’였다.
회복적 정의를 만난 뒤, 교육의 문제는 관계의 단절과 공동체성의 상실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의 능력부족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의 교육구조가 단절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나의 능력을 탓하거나 학생의 미숙함을 탓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좀 더 구조적으로 교육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회복적 정의를 교육의 패러다임으로 끌어들인 것이,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그때부터 회복적 생활교육을 나의 소명으로 여기고 휴직을 한 뒤,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에 몸을 담게 되었다. 학교 안에서의 관계 단절은 구성원 간의 불신과 책임회피를 불러왔고 결국에는 학교폭력의 심화를 가져왔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으로서의 교육의 본질이 훼손되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경쟁하는 곳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이 단절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회복적 생활교육에서는 관계성 강화와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나름의 해법이 있었고, 나는 지난 4년간 학교와 교사들을 방문하고 만나면서 단절과 관계성의 회복을 강조하고 경험하는 자리를 갖았다. 새로운 접근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교사의 권위에 대한 부정과 비난으로 여겨 거부하는 경우와 자신들의 원하는 방향과 같다며 호응하는 반응이었다. 나는 지금도 교사들을 찾아다니면서 관계성 회복을 위한 회복적 생활교육을 소개하며 다니고 있다.
교사의 단절이 더 큰 문제
교사들 대상으로 관계성 강화 워크숍을 진행할 때 주로 하는 활동이 체크 인 서클이다. 체크인 서클은 배움의 공간을 시작할 때 각자의 느낌과 기대에 대한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나누는 활동이다. 간단하여 누구나 할 수 있고, 전혀 새롭지 않은 방식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 경험을 새로워 했다. 1년 전 5월 즈음, 어느 고등학교에서 40명의 교사들과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체크 인 서클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20명에게 한 사람당 1분의 시간을 주고 자신의 현재 느낌과 기대를 나누라고 하고, 20분의 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교사들의 체크 인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상황을 살펴보니, 교사들 간에 서로의 이름과 교과목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같은 학교에서 3개월간 함께 지낸 교사들인데, 서로의 이름과 교과목조차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유를 물어보니, 서로 얼굴 마주할 시간도 없고 교무실도 달라서 누가 누군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대답했다. 사실 학교에서 회의나 회식의 자리가 있어도 다같이 소개하고 나누는 시간은 없어서 1년이 지나도 말을 해보지 못한 동료가 적지 않다. 교육의 단절, 학교의 단절의 문제는 교사 간의 관계 단절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안산 ○○초등학교의 방문
교육의 단절 해결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회복적 생활교육운동을 할수록 단절의 문제는 교사들에게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사는 단절의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보지 않았고, 학생들의 문제로 보았다. 그래서 워크숍을 진행하면 학생들에게 어떻게 적용해야하는지에 초점이 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자신의 단절을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지점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올 5월에 안산에 있는 ○○초등학교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전, 4월16일 안산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위해 떠났다가 세월호 배가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교사와 학생 200여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었고,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과 동료 교사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방문하기로 한 ○○초등학교는 단원고등학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 사고 여파가 클 수 밖에 없는 학교였다. 이러한 세월호 참사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교사들을 만나 강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과연 이런 상황에서 교사연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 회의감이 들었다.
○○초 교사들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연수였기 때문에 강의실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얼굴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나는 고민 끝에 준비한 강의를 모두 내려놓고, 세월호 관련한 애도와 마음을 주고 받는 신뢰서클을 하기로 했다. 그 당시 세월호의 충격은 있었지만, 교육청에서는 학교 내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제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는데, 나는 오히려 세월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힘든 얘기이지만 세월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다양한 감정이 존중받고 소통되는 대화의 자리
진행자인 내가 먼저 교사로서 느끼는 세월호의 비참함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땠다. 그리고 토킹 스틱을 돌렸다. 연수 담당교사는 바쁜 교사들을 소집해서 연수를 추진해야 하는 마음의 부담을 이야기하고 토킹 스틱을 옆 사람에게 넘겼다. 마음이 괴로워서 세월호 추모관을 자주 찾는다는 교사의 고백, 희생 학생의 장례식을 3일 동안 도우면서 유가족의 처절함에 함께 했던 교사의 이야기, 반 학생 중에 세월호 희생자의 친척이 있어서 마음이 쓰인다는 이야기, 세월호로 인해 잠을 자기 어렵다는 사연…. 그렇게 10여명 교사들의 고통스런 이야기는 가슴을 울려왔고, 대화의 공간에 참여자들의 온 마음이 모아져갔다. 선생님들의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들은 계속이어 졌다. 울적한 마음에 주말에 친구와 만나 신나게 놀았다는 이야기, 해외에 살고 있는 시댁 식구가 왔는데 빨리 시간이 지나서 나만의 자유 시간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최근 취미생활로 시작한 서예로 인해서 삶에 생기를 되찾았고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이야기, 반면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려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간신히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 대화의 공간은 비참함과 절망, 불안, 무기력함 뿐만 아니라 흥미롭고, 재미있고, 생기가 솟는다는 상반된 감정들까지도 거리낌없이 교차되고 공유되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말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어떠한 감정이나 이야기도 거부되지 않았고, 똑같은 무게로 존중되었다. 그렇게 연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나버렸다.
그 다음 주에 한 번 더 방문을 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교사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두 번째 시간은 교사들이 원하는 대로 대화법을 공부하고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며 보냈다. 그 학교를 처음 방문하기 전에 느꼈던 나의 부담감은 교사들과의 진솔한 만남을 통해 기쁨과 충만함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혁신학교에 도전.
그 후 10월 초에 ○○학교 연수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5월 연수 이후에 학교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지 자세히 물었다. 교사들은 한 번도 서로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나눈 경험이 없었는데, 그날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깊은 유대감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우리도 안전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되면서 그날과 같은 대화방식으로 세 차례나 대화의 장을 가졌다고 한다. 이야기의 주제는 현재 학교생활의 어려움과 고민, 학교에게 바라는 것, 아이들의 필요와 교사의 필요 등이었다. 대화모임 결과 학교문제에 대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혁신학교를 추진하기로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2학기가 된 9월에 안산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혁신학교로 지정되는 결과를 얻었다. 그 소식은 너무도 반갑고 놀라웠다. 무엇이 교사들의 마음을 열고 하나로 묶게 했을까? 자못 궁금했다. 그래서 11월, 다시 ○○학교를 방문했고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법을 배웠고 내 마음이 따뜻해야 내 주변도 따뜻해진다고 느꼈어요.”
“따스한 시간이었습니다.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고 기다리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동료 선생님들의 상황, 감정 등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교육 공동체로서 얼마나 함께 삶을 공유하고 있는지 함께 교육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는지 한번 씩 기회를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학교의 생활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딱딱한 분위기에서 전달내용 듣기만 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둥글게 모여 앉은 것은 획기적이었습니다. 연수를 위한 모임에서 우리가 그렇게 까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평소 아껴 온 말을 내뱉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간 교실 속 외로운 섬에서 홀로 지내다 다른 섬을 만나 연결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학교는 같은 마음, 소박하고 진실 된 사람들이 많구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학교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고민하게 되는 여러 가지 생각을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공감하며 공동체 의식을 새롭게 다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직인생의 방향과 미래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시기였는데, 내가 느끼는 삶의 무게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하며 나아가고 있는 길이라는 사실이 새삼 고맙고 다행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무엇이 교사의 마음을 열게 하고 하나로 묶게 했을까?
단절되어 있는 교사들의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의 공동체로 묶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교사들과 신뢰서클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부탁한 점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부탁과 교사들의 피드백을 통해 교사의 마음을 열게 했던 요소들을 돌아보았다.
첫째는,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기다. 국가적인 재난인 세월호의 무거운 슬픔과 절망 뿐 아니라, 시댁식구들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까지 매우 사적이고 깊은 내면의 이야기들이 자유롭게 소통되었다. 내 안의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나와 내 자신이 단절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나와 자신과 단절되지 않을 때 우리는 치유의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내면의 진실을 드러냈다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많다. 우리는 옳고 그름의 세계에 살면서 내면의 진실이 이분법적 잣대로 평가받기 일쑤였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숨기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내면의 진실이 아닌 외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표현하는 말들은 우리의 삶을 공허하게 하고, 나 스스로를 자신과 단절시키고 만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들은 자신의 내면을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표현했던 것이 가장 큰 힘이었던 것 같다.
둘째는, 상대의 말을 마음으로 듣기다. 나는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 말하기 시작하면 각자의 이해의 틀을 내려놓고 상대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존중해 주며 경청할 것을 요청했었다. 선생님들은 누군가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함께 숙연해졌고, 또 누군가 시댁이야기를 할 때는 함께 웃으며 걱정해주었다. 서로 다른 이해의 틀로 들었다면 아마도 불편한 표정이나 모습들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 내내 흐르고 있는 감정에너지 속에 함께 머무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말을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을 때 우리는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
셋째는, 말하기를 선택하기이다. 모든 사람에게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말하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어떤 것도 강요되지 않으면서 내면의 힘으로만 말하기를 선택했을 때 우리의 영혼은 더욱 힘을 얻게 된다.
넷째는, 사적인 것을 보호하고 존중하기다. 우리가 내면의 진실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는 안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회자된다면 내 안의 진실을 드러내놓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대화의 공간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사적인 것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그 날의 대화모임은 우리의 내면의 진실이 평가로부터 벗어나 존중받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한 따뜻함과 수용은 교사들을 끈끈하게 연결시켰고, 단단해진 관계 그물망은 잃어버렸던 우리의 본성인 신뢰, 존중, 연민, 사랑, 공동체를 회복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회복된 공동체를 지속시키기 위해 선생님들은 혁신학교에 도전하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교사가 마음을 열고 하나의 공동체로 회복하게 해주었던 힘은 교사들 각자가 자신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힘과 그것을 존중하고 품어줄 공동체의 힘이었다. 학교마다 교사가 먼저 내면의 힘을 통해 교사 공동체가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교사의 회복이 학생들의 회복을 이끌어 올 수 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교육의 회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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