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영의 회복적생활교육 이야기

세월호 참사 이후, 교사의 삶

평화숲 2015. 10. 24. 17:58

박숙영의 회복적 생활교육 이야기 34

 

 

세월호 참사 이후, 교사의 삶

 

미안하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무조건 어른들 말 잘 들으라고 가르쳐서 미안하다.

-김형태의 세월호 추모 시 일부

 

 

작년 4, 세월호 분향소의 벽 전체를 채우고 있던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온 몸으로 공포와 절망이 끼쳐왔다. 이후에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으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교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웃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은 졸업 앨범에 있어야 하는 건데, 어째서 영정사진으로 있는가.

세월호 희생자 영정 사진 속에서 나는 매번 지금의 학교 아이들이 오버랩 되었고, 그때마다 죄인 된 마음으로 가슴을 쳤다. ‘내가 아이들을 저렇게 만들었구나.’라는 자책과 절망감으로 땅을 치며 회개의 눈물을 쏟게 된다. 그런 절망감과 자책과 회개의 순간들이 흘러, 세월호 참사 1년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 교실현장에서 나는 무엇이 바뀌었나? 아이들의 영정 사진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는데, 그래서 내 삶 속에서 무엇이 달라졌나? 세월호 참사 이후 1,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본다.

 

세월호 참사이후 교육계의 반성, “수동적 교육 시스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냈는데, 교육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수동적 교육 시스템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 있으라라는 배 선원의 지시를 대부분의 교사와 학생이 순순히 믿고 따랐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그동안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이 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순종하도록 기여했다. 학생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 말대꾸한다고 나무랬고, 수업시간에는 교과서대로 가르치고 교재대로 답하도록 했다. 이러한 교육패턴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도록하기보다는 인생의 답을 자신의 밖에서 찾게 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주도해 나가는 주체적 힘이 약화되어갔고, 부모, 교사, 또는 사회적 기대에 자신을 짜맞추느라 분투했다. 세월호의 침몰 속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자신의 판단보다는 가만 있으라는 세월호 선원의 말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것도 무의식 속에 내면화된 수동화때문이다.

세월호 밖에 있는 우리도 역시 수동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자신의 판단보다는 권위자의 말에 의존하는 삶을 반복하고 있고, 학교도 역시 수동화 교육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내면의 성찰을 불러오지 못한다면, 전문가에게 의지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전문가에게 의존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무력화될 것이고 세월호는 반복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학교는 수동적 교육시스템에서 벗어나서 학생들에게 삶의 주도권을 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의 삶의 주도권 회복을 위해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내면의 지혜를 믿고 성찰할 수 있도록 배움의 공간을 열어 주어야 한다. ‘설명하고 가르치기가 교사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생각을 바꿔서 질문하고 대화하기를 시작해야 한다.

올 해, 나는 이를 위해 수업은 대화식 수업을 시작했고, 학급에서는 학급의 문제에 대해 학급공동체가 함께 묻고 대답하는 학급서클을 시작했다. 세월호 이후 반성을 통해 변화하려고 시도한 실천들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시 다잡고자 한다.

 

삶의 주도권 회복 1. 대화식 수업

대화식 수업에서는 교사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내면의 지혜를 믿고 어떤 이야기든 자유롭고 평등하게 말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옳고 그름의 잣대를 작동시키지 않고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 집중한다. 학생들이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 먼저 학습 공간이 안전하다는 신뢰와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어주는 구성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화식 수업의 첫 시간은 안전한 학습공간을 만들기 위한 약속정하기와 경청훈련으로 시작했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신선하고 흥미로워했다. 모두가 질문에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표현되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피드백 해주었다. 나는 수업의 질문을 만들기 위해 질문 속에 교사로서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깊은 성찰 이후에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내게 안정성있고 진정성 있는 수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학급당 인원수가 35명이라서 마지막 학생까지 모두가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 버겁고 힘들었지만, 한계 속에서도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표현해주었고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처음 시도했던 대화식 수업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만족스러웠고 학생들이 보여주는 태도도 예상보다 아주 훌륭했다. 그동안 수업에서 교사의 목소리로 채우느라 잔뜩 힘을 주어야 했었는데,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내어 주니 훨씬 힘도 덜 들고 배움도 풍성해졌다.

 

삶의 주도권 회복2. 학급서클

학급의 문제를 교사가 판단하여 따르라고 하기보다 학생들은 학급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가지고 협력하도록 학급서클을 열었다. 첫 학급 서클은 첫 만남의 소감과 기대에 대해 나누고 축복하는 편지를 전달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3주 후에 두 번째 학급 서클은 그동안 학교 생활하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을 나누고 함께 노력해야 할 점들에 대해 의논했다. 감사하게도 첫 날부터 시작했던 학급 서클 로 학기 초 느끼는 긴장감과 경직된 분위기가 부드럽고 말랑해져서 아이들 사이는 우호적이고 친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학급 서클에서는 친구로부터 받은 호의와 존중으로 감동받았던 사연들이 많이 들려졌다. 학급에 대한 애정과 감사의 이야기들이 학급 공동체를 더욱 따뜻하게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교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학급의 문제들도 드러나서 함께 노력해야 할 점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다. 학급의 문제를 교사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개선점에 대해 인식하고 바꿔나가고자 하는 마음도 모아졌다. 학급 서클에서도 교사는 기존처럼 힘주어서 잔소리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니 훨씬 효율적이었다. 교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적절한 질문과 학생들에 대한 신뢰가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4, 다시 학생들에게 질문하기

4월이 지나가면서 학생들 사이에 새로운 역동이 시작되었다. 수업태도가 느슨해지고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수업 중에 엎드려 있는 학생, 질문에 대답하기를 선택하지 않는 학생,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친구와 떠드는 학생, 청소시간에 도망가는 학생나는 다시 조금씩 긴장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믿고 존중해주고자 노력했는데, 4월을 보내면서 학생들은 책임으로부터 멀어지고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 같아서 고민스러워졌다. 실망스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염려증이 발동되기 시작했고 나의 잔소리가 늘어났다. 얼굴은 웃기보다는 양미간에 힘을 주어 경직되어 갔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기 사작했고 대화도 사라졌다. 순간 화가 나서 입 다물어!!”라고 소리쳤다.

. 나는 조금씩 다시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4, 다시 학생들에게 질문하기를 시작한다. “여러분은 이 공간에서 존중을 경험하나요? 여러분은 이 공간에서 서로를 위해 또 학급전체를 위해 책임을 실천하고 있나요?” 아이들은 존중에 대한 경험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책임에 대해서는 말이 줄었다. 다시 질문했다. “우리에게 어떤 책임이 필요할까? 개선해야 할 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세 번째 학급 서클의 주제는 이렇게 공동체의 책임이 되었다. 개선해야 할 점 첫 번째는 교실청결, 두 번째는 수업 중 정숙이었다. 교실청결과 수업 정숙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했다.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지혜를 다시 믿고 대화를 시작하자.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내게 세월호를 기억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들을 수동화시키기를 멈추고 삶의 주도권을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나의 의도대로 잘 따라와주지 않는다. 교사의 의도에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들도 그들의 의도와 익숙한 삶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아이들에게 다시 묻고 서로의 필요를 공유하고 협력하며 격려하는 일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월호 1주기에 무뎌진 나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