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영의 회복적생활교육 이야기

교사 간의 단절이 더 문제

평화숲 2015. 10. 24. 17:52

박숙영의 회복적 생활교육 이야기 31

 

교사 간의 단절이 더 문제

 

나는 교육 전체에 스며 있는 이러한 고통을 단절의 고통이라고 부른다.

어디를 가든, 자신이 동료들로부터, 학생들로부터 또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교사들을 만난다.

- 파커 파머

 

 

교사 간의 단절이 더 큰 문제.

 

지난 5, 어느 고등학교에서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의 이야기다. 안전한 배움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워크숍 시작은 항상 체크 인 서클로 진행한다. ‘체크 인 서클이란, 각자의 현재 마음의 풍경을 돌아보고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활동이다. (간단하여 누구나 할 수 있고, 전혀 새롭지 않은 방식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 경험을 새로워 한다.) 그 당시 전 교직원 4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사람당 1분 씩, 20분간 체크인의 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교사들의 체크 인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궁금해서 상황을 살펴보니, 교사들은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들처럼 서로의 이름과 교과목을 소개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3개월 간 함께 지낸 교사들인데, 서로의 이름과 교과목조차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유를 물어보니, 서로 얼굴 마주할 시간도 없고 교무실도 달라서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때 학교 안의 교사의 단절이 얼마나 심각한지 돌아보게 했다.

 

바빠질수록 심화되는 단절

 

학교규모가 커지고 일과가 바빠지면서 학교 안의 단절은 심화되고 있다. 바쁜 일상과 일과는 사람 간의 관계를 기계적으로 만든다. 주어진 업무도 기계적으로 처리하게 되는데, 학교의 경우에는 그 당사자가 학생들이라서 학생을 대상화시키게 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기계적인 관계는 우리의 존재를 피폐하고 공허하게 만든다. 학교폭력은 공허하고 피폐해진 영혼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며, 결국 학교폭력의 근본적 원인은 학교 전반에 깔려있는 단절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단절의 땅에서 학교폭력의 나무가 자란 것이다. 그래서 학교폭력은 지금의 땅을 갈아 엎어서 바꾸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단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교사 간의 연결이 가져온 선물

 

세월호로 인한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있을 때, 단원고에서 몇 정거장 떨어져 있는 어느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세월호 침몰이 있은 지 한 달 정도 되는 때라서 그 초등학교를 방문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연수는 분주한 교사들을 더욱 분주하게 할 뿐, 교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세월호 충격 속에서도 진행해야 하는 이번 연수가 매우 부담스럽고 싫었다.

나 스스로 회의적으로 느끼는 연수를 진행하는 것이 힘들어서 준비한 강의를 모두 포기하고 내 마음을 짖누르고 있는 세월호의 무기력과 분노에 대해 안전하게 말하고 듣는 시간을 제안했다. 다행히 선생님들은 나의 의견에 동의하고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대화시간은 두 시간동안 이어졌다. 단원고와 가까이 있는 학교라서 세월호 충격이 적지 않았다. 같은 교회 학생을 보내야 했던 선생님, 마음의 짐으로 인해 주말마다 분향소를 찾는 선생님, 반 학생 중에 희생자 친척이 있어 조심스럽기만 하다는 선생님, 세월호 이후에 잠을 자기 어렵다는 선생님, 왜 사는지 이유를 잃어버려 하루 하루 허무하다는 선생님. 어디에서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대화를 하는 동안 세월호의 비통함 속에서 모두 한 마음으로 머무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는 세월호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니다. 불편한 시댁이야기, 기분 전환을 위해 주말에 신나게 놀았던 이야기, 육아로 지친 아내를 위해 퇴근하기 전에 시장을 보고 들어가겠다는 이야기, 최근 시작한 취미로 성취감과 삶의 생기를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 지금 현재 자신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이야기를 한 껏 쏟아 냈다. 함께 있었던 모든 교사들은 각자의 비통함이든, 생기발랄함이든 어떤 이야기든지 간에 상대의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서로를 지원하고 있었다. 다양한 감정들이 안전하게 교차하며, 교사연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흘러갔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다. 요지는 이렇다. 그날 이후에 학교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생활지도가 변한 것이 아니라, 교사 문화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날의 경험은 서로 허심탄회하게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동일한 방식으로 대화를 하자는 제안에 따라 세 차례 대화모임이 이어졌다. 세 차례의 대화모임을 통해 교사들 모두가 학교에서 행복한 생활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확인하게 되었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한 방법을 찾다가 혁신학교에 도전하자는 데 모두 동의 하게 되었다. 그리고 9월에 안산에서 유일하게 혁신학교로 지정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랍고 기뻤다.

무엇이 교사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 당시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때 내게 다가온 것은 연결이었다. 교사간의 진정성 있는 연결은 서로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진실한 공감을 통한 연결은 공동체성을 회복하게 하는 힘이 있으며, 긍정적인 선택과 협력할 수 있는 마음을 준다.

그 날, 선생님들이 경험한 것은 바로 공동체의 깊은 연결이었다.

 

교사 공감 서클을 제안한다.

 

학교폭력문제, 학교 혁신, 교사 역량 강화, 교육의 구조적 모순 해결과 같은 거대한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거대하고 산적해 있는 교육담론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작고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교사 공감 서클을 제안한다.

교사 간의 관계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너머서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교사의 단절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교육의 단절은 당연하다. 뿌리와 토양이 썩었는데, 어떻게 좋은 열매 보기를 원할 수 있을까? 뿌리와 토양을 가꾸어야 하는 교사들이 단절되어 있는데, 뿌리와 토양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가꿀 수 있는가? 교사들의 관계와 공동체성 회복이 먼저다. 이를 위해 교사 공감 서클이 필요하다. ‘교사 공감 서클은 매우 간단하고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릴 적 이미 해보았던 것들이다.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서로의 진실을 표현하고 서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단 한 곳만 있어도 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다. 교사들 각자는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Support system을 구축해야 한다. ‘교사공감서클은 그러한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교사공감서클이 가능하도록 하기위해서 공감 서클 주춧돌을 세워야 힐 필요가 있다. 즉 서로 합의하는 최소한의 약속들인데, 그것은 1. 솔직하게 표현하기, 2. 깊이 있게 듣기, 3. 말하기를 선택하기(통과허용), 4. 사적인 것을 보호하기, 5. 자기돌봄과 공동체 돌봄을 위해 요청하기, 6. 침묵을 초대하기 등이다.

교사 공감 서클은 서로 이야기하고 듣는 공간이다. 서로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하고 듣는 과정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길을 다시 찾게 도와줄 것이다. 교사 공감 서클은 수다처럼 보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다는 한 사람만 말하고 다른 사람은 듣기만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누구나 동등하게 말할 기회를 갖는다. 그러면서도 말하기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없다. 스스로 준비되었을 때 선택해서 말할 수 있다.

진실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길을 찾게 하고, 내면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교사 공감 서클은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내면의 경험을 진실하게 나누는 것으로 인해 치유와 용기를 얻고, 인간 본성을 회복하게 할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감과 연결, 평화, 정의를 추구한다.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 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박노해의 길 잃은 날의 지혜중 일부

 

작은 진실, 작은 물길, 흙과 뿌리를 살리기 위해 새해, 새 학기에는 학교 안에서 교사 공감 서클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