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영의 회복적생활교육 이야기

[스크랩] 어떻게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평화숲 2016. 10. 13. 10:12

박숙영의 회복적 생활교육 이야기 51

 

 

 

어떻게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비폭력대화의 창시자인 마셜B. 로젠버그에게는 두 가지 질문이 있었다. 첫째, 왜 우리는 본성을 잃고 서로에게 폭력을 쓰면서 살게 되었을까? 둘째, 그런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자기 본연의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유지하고 있는가?

 

 

괴물과 싸우다보면 자신도 괴물이 되어간다.

누군가와 신경전이 벌어지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사소한 것도 신경 쓰이게 되고 예민해진다. 불행하게도 나는 한 학생과의 신경전을 벌이게 되었다. 희수(1)와의 신경전은 한 학기 내내 나를 지치게 했다. 교실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모든 에너지가 희수에게로 쏠려버렸다. 그 아이 역시 그랬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수업시간에 그 아이 옆을 지나쳤을 때 나의 옷에 대해 말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모욕감을 느꼈고 곧 폭발했다. 그 아이를 향해 뒤돌아서서 지금 무슨 얘기했니? 선생님이 지나가는데 뒤에서 샘 얘기를 하는 게 맞니?”라고 대응했다. 나의 예민한 목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려 퍼진다. 희수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 내가 뭐라고 했다고 그래요!!!”라고 응수했다. 그동안 아이의 불손한 태도에도 잘 버티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한 나는 희수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교사에 대한 불손한 태도에 대해 경고를 했고, 희수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슬프게도 나의 인내력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학생에 대한 분노와 폭력 앞에 폭력으로 굴복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로 자괴감과 무기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의 내면은 무기력, 자괴감, 모멸감, 좌절, 분노로 가득 찼고, 조금씩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폭력과 싸우다보면 나도 모르게 폭력적이게 된다. 학생을 지도하면서, 자녀를 훈육하면서 아이들의 미숙함과 실수, 불의한 행동을 선한 의도로 고쳐주려고 했던 첫 마음은 어느 새 변질되어 버리고 나의 미숙함과, 나의 실수와, 나의 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좀비와 좀비 바이러스는 폭력적인 우리 시대를 나타내는 메타포다.

최근 좀비 영화가 많이 쏟아지고 있다. 좀비는 멀쩡한 인간이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이 되어 인간다움을 상실하게 된 괴물이다. 좀비가 된 사람은 다시 사람들을 또 다른 좀비로 감염시킨다. 좀비가 좀비를 낳고, 좀비를 확산시킨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폭력을 확산시키듯이. 무기력이 무기력을 낳고 무기력을 확산시키듯이. 결국 세상은 폭력과 절망, 무기력으로 가득 찬 좀비 자체가 된다.

좀비 영화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그대로 투영한 듯 많이 닮아있다. 불행하게도 말이다. 좀비와 좀비 바이러스는 폭력적인 우리 시대를 나타내는 메타포다.

최근 들려오는 끊이지 않는 분쟁과 테러, 전쟁, 기득권과 정치권의 심각한 부패, 묻지마 폭행, 아동 학대, 자살 등,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사회는 심각한 폭력적 순환 고리에 묶여 있고 폭력적 순환 고리에 의해 강력하게 작동되고 있다. 혐오주의, 무기력과 무감각, 분노조절장애 등등, 좀비 바이러스에 조금씩 감염되어 가고 있다.

뉴스로만 듣던 일들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 교실에서도 일어난다. 최근 선생님들을 만나러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안타까운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어떤 남중학생은 여학생들이 가까이 접근하면 무조건 난 여자 싫어!”라고 외치면서 때리는 흉내를 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게 된 남학생의 사연은 이랬다. 원래 활동적이었던 남학생은 한때 자신의 과도한 몸 움직임으로 인해 한 여학생이 폭력적이라고 느끼게 되어 항의를 받게 되었고, 그 일로 부모와 자신이 곤혹을 치뤘다. 그 후로 부모는 남학생의 행동을 지나치게 단속하였고 남학생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도 폭력으로 여기게 될까봐 아예 여학생들이 주변에 오지 못하게 과민반응하게 되었다. 여성혐오가 그렇게 그 아이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또 다른 사연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중학교 남학생이 얼굴만 알고 있는 다른 반 남학생을 복도에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갑자기 주먹으로 여러 차례 때려 코뼈를 부러지게 한 일이 있었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 학생에게 왜 잘 모르는 친구를 때렸냐고 물었더니 그냥요.”라고 답변했다. 치료비를 보상하고 학교징계를 받으면서 그 남학생은 뒤늦게나마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일로 학교와 부모 모두는 큰 충격에 빠졌다.

 

끊이지 않는 전쟁, 분쟁, 폭력의 순환 고리가 더욱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이 21세기에, 어떻게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좀비영화인 월드워Z를 보면, 좀비가 인간을 향해 달려들어 상처를 내고 바이러스를 옮기는 과정은 매우 순식간에 일어난다. 인간이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고 속수무책으로 좀비에게 당하여 영혼을 잃어버린 좀비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매우 눈길을 끄는 한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좀비들이 사람들을 덮치며 몰려오는데 그 중 한 사람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어떤 좀비도 그 존재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의 영혼을 빼앗지 못했다. 그의 인간성을 훼손하지 못한다.

끊이지 않는 전쟁, 분쟁, 폭력의 순환 고리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는 마치 좀비 바이러스가 충천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순식간에 폭력적이게 하고 쉽게 인간다움을 상실하게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폭력적 사회에서도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고 선한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영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 폭력적 사회와 당당하게 대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난 여름 나는 매우 인상적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강정마을에서 불법적인 해군 기지 건설 과정을 감시하며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는 멧부리 아저씨(박인천 44). 원래 용접공이었다는 멧부리 아저씨는 2012년에 우연히 강정마을의 평화대행진에 참여하였다가 젊은이들이 평화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제주도에 눌러 앉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 발생하는 불법적인 행태를 감시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고 있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경찰에 억울하게 연행되는 일도 있었고, 폭력을 당한 일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었던 원래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초라하고 불편한 천막에서 살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고층 숙박업소와도 비교되는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천막이 그의 생활공간이었다. 멧부리 아저씨와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정마을의 싸움은 이미 진 싸움처럼 보였다. 강정의 구럼비바위는 폭파되었고 해군 기지 건설은 꽤 많이 진척되어 있었다. 비루해 보이는 천막 생활과 폭력적인 해군과의 싸움 한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얼굴에서 무기력과 절망을 읽을 수가 없었다. 새까만 얼굴과 마른 체형, 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긴 팔 옷을 입고 있는 그. 외적으로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에게서 편안함과 평화, 온전한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는 인간적 외로움과 절망을 이겨내며 여전히 인간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지키고 있는가?

 

어떻게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폭력과 비상식, 부정의가 난무하는 사회에서는 언제든 인간성을 상실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평화의 태도와 평화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좀비 같은 사회에서 좀비가 되지 않고 나의 영혼을 지켜낼 수 있을까? 파커 파머는 외부의 세계를 지탱하는 힘은 내면의 세계인 마음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결국 외부 세계의 폭력적 구조를 만들어 내고 유지시키는 것은 내면의 폭력이다. 좀비 사회에서 좀비가 되지 않는 것은 내면을 지키는 일에서부터다. 일상이 너무 분주해서 생각을 멈추고 돌아보지 않을 때가 많다.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방향을 잃은 채 영혼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가운데 찾아오는 나의 영혼은 공허함과 무기력에 점령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외부 세계를 지탱시키는 힘, 마음의 습관. 나는 어떤 마음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내면을 더욱 단단히 지켜야 할 일이다.

 

출처 : 회복적 생활교육
글쓴이 : 박숙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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