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영의 회복적생활교육 이야기

[스크랩]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

평화숲 2016. 10. 13. 10:12

박숙영의 회복적 생활교육 이야기 52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

 

 

법과 정의에 대한 성서적 사고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샬롬(shalom)’언약(covenant)’의 개념이 핵심적이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하워드 제어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

회복적 정의에서 회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혹 선생님들을 만나러 다니며 이야기를 듣다보면, 회복에 대한 이미지가 다양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선생님들이 회복이라는 단어를 통해 떠올리는 이미지는 특히 치유와 닮아 있다. 치유는 회복적 과정의 결과로써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지지만, ‘회복그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복적 정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워드 제어를 통해 회복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회복적 정의의 출발은 응보적 정의(사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응보적 정의가 처벌을 통해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제로 가해자 처벌에 집중하게 된 것과 달리, 회복적 정의는 당사자와 공동체가 발생한 피해를 회복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고 이를 통해 피해가 회복될 때 정의가 이루어진다본다. 그러면 어떤 피해가 발생했고, 무엇을 회복한다는 것인가?

 

자아 회복

첫째는 왜곡된 자아의 회복을 의미한다.

폭력과 갈등으로 발생한 첫 번째 피해는 자아의 왜곡이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두에게 자아의 왜곡이 일어난다. 특히 피해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율성을 가해자에 의해 침해당하게 된다. 즉 피해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지배력을 가해자에게 빼앗겨 버림으로써 자신의 삶이 타인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되는 수치를 당하게 된다. 무기력과 자존감의 상실로 인한 자아 왜곡은 피해자로 하여금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인생에 의미가 있고 자신이 안전하며 자기 삶을 자기가 스스로 통제한다고 다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피해자에게 원상회복과 치유가 주어져야 한다.

반면, 피해를 입힌 사람의 왜곡된 자아 회복도 중요하다. 피해를 입힌 사람들의 대부분의 특징은 낮은 자존감과 자기통제력 부족, 문제해결능력 부족이다. 잘못된 행동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낮은 자존감과 자기통제력 부족, 문제해결능력 부족에서 오는 왜곡된 자아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폭력적인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가해자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존재의 무가치다. 존재 무가치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인정하기보다는 합리화하려고 애쓰고 자신의 가치의식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가해자 역시 자기 통제력, 즉 자기 삶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발생한 피해에 대해 도의적이고 자발적인 책임져야 한다.

 

관계 회복

두 번째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회복이다.

폭력이나 잘못된 행동으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관계 회복이 없다면 서로에 대한 선입견이나 적 이미지가 강화되어 폭력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관계 회복을 위해서 서로가 발생한 일로 인한 영향과 사건이 일어나게 된 사실적 맥락, 각자의 요구들이 서로에게 들려져야 한다. 이를 위해 회복적 과정으로 두 사람 간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안전한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관계회복은 진정으로 당사자 간의 잘못을 바로 잡고 화해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길로 안내한다.

관계회복은 화해를 의미하며, 화해는 용서와 회개를 의미한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용서를 요구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용서는 피해자 입장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적개심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용서는 결코 범죄를 범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진정한 용서는 자아회복과 치유를 이끌고,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와 범죄로부터 삶이 휘둘리지 않고 극복할 수 있게 한다.

반면 가해자는 회개해야 한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도의적 책임을 지는 과정을 통해 자기통제력, 자기 삶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하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서와 고백이 모두 필요하다. 가해자가 진정한 자아회복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그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받아들이고, 피해를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 회개가 가능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가해자의 고백과 회개는 가해자의 치유의 열쇠임과 동시에 피해자의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관계 회복과 화해는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을 너머서서 서로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고 미래를 위해 생산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공동체 회복

폭력이나 잘못된 행동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도 영향을 준다. 개인의 삶은 공동체의 삶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한 개인의 피해는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피해로 연결된다. 공동체 구성원 간의 갈등이나 폭력은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고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와 협력을 약화시킴으로 공동체성을 훼손한다. 즉 개인에 대한 훼손은 공동체에 대한 훼손이다.

반면 공동체는 개인의 행동과 잘못에 대한 책임이 있다. 폭력이나 범죄의 유발요인은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적 구조, 문화 등등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이 존재한다. 개인의 문제는 공동체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복적 과정에 공동체는 반드시 참여해야 하며,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도 공동체는 책임을 져야한다. 공동체는 개인을 지원하고 지지해야 할 역할과 의무가 있다.

 

정의 회복

발생한 피해로 인해 균형이 깨어진다. ‘정의는 깨어진 균형을 바로 잡아야 하는 추상적인 도덕적 질서이며, 정의는 응당하거나 노력의 대가여야 함을 의미한다 (하워드 제어).’ 깨어진 균형을 올바로 하기 위해 피해자에게는 물리적 정신적 피해의 인정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며, 사건의 배경과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이 밝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재발방지를 통한 안전에 대한 확신이 주어져야 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사과와 보상을 통한 자기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더불어 회복적 실천을 위한 모든 진행과정은 가해자에게도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공동체의 정의 회복을 위해서도 발생한 일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공정하고 투명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며 처리과정 역시 공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가 회복되고 정의를 경험할 수 있다.

 

회복의 비젼, 샬롬

성서적 입장에서 회복적 정의는 샬롬을 향하고 있다. 샬롬은 보통 평안이라고 번역되는데, 보다 진정한 의미는 사물이 있어야 하는 대로 있는 올바름의 상태이다. 구약 연구자인 페리 요더에 의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샬롬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첫 번째 차원은 물리적물질적 조건 내지 환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행복한 상태로 건강, 물질적 번영 뿐만 아니라 질병, 가난, 전쟁 등 물리적 위협이 없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차원은 사회적 관계다. 하나님은 인간이 서로 간에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 또한 경제적정치적 관계에서도 억압과 부정의가 없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 차원은 도덕적윤리적 영역에 관한 것으로 정직함을 의미한다.

회복적 정의와 샬롬에 대해 하워드 제어는 자신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샬롬은 사물의 형상에 관한 하나님의 의도를 정의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세상에서 대인적사회적정치적 관계 그리고 개인적인 성격에서 올바른상태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사물이 있어야 하는 대로 있지 않으면 샬롬이 있을 수 없고, 샬롬의 부재(不在)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던지는 비판의 핵심이다. 또한 샬롬의 비전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약속을 이룬다.”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궁극적 답변은 샬롬이다. 회복의 대상이 개인의 자아에서 출발하여 관계, 공동체, 정의, 그리고 샬롬으로 확대되었다. 결과적으로 회복의 대상이 거시적이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확대되어 구체성과 현실성이 흐려지고 흩어지는 것 같다.

반면 더욱 명료해지기도 한다. 좁고 어둡고 막막한 길 위에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는 현실에서는 결코 길을 잃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별빛이 필요한데, 그것을 샬롬은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샬롬을 묻는다.

너는 평화로운가? 너는 온전히 편견 없이 바라보는가? 너는 진리 위에 서 있는가?.

 

 

출처 : 회복적 생활교육
글쓴이 : 박숙영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