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영의 회복적생활교육 이야기

평화의 물방울이 물결로 흐르기 시작하다.

평화숲 2014. 3. 22. 22:37

2013년 6월호-11

 

평화의 물방울이 물결로 흐르기 시작하다.

대구 TCF, 한연욱 선생님의 이야기

 

행복한 교사가 되 2012년 3월, 내가 처음 만났던 고1 학생들은, 도시 주변부에 위치한 산업현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부모의 자녀들이었다.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은 대구의 강남이라고 할 수 있는 수성구나 특목고로 전학을 갔고, 중위권 학생들은 자율형 사립고로 빠져나갔고, 그나마 성실(?)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은 공업계 고등학교나 상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정해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내신을 잘 받기 위해서 우리학교를 선택한 극소수의 중상위권 학생들과 여기저기서 밀려난 대다수의 가망 없는 문제(?) 학생들이었다. 누적된 학업부진에 배움을 포기한 아이들과 수도권 유명 대학에 몇 명을 입학시키느냐에 사활이 걸린 인문계 입시 위주 교육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피 튀기는 혈전이 예고되어 있었고 교사와 학생 모두 브레이크 없이 서로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맞부딪혀 깨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비극적인 것은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에서 최전방에 나서야 할 학년 생활 지도 담당 교사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었다.

 

2012년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가 해야만 하는 일들, 특히 관리자들이 원하는 일들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마음을 독하게 먹고, 내 자신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 결과 나는 아주 거칠고 야수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나의 기준에 맞아 떨어지지 않는 학생들을 향해 꿈틀대는 분노를 여지없이 폭발시켰다. 나는 두려움으로 아이들을 복종시키려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도난 사건 19건을 해결했고 다수의 아이들을 정학 조치했다. 흡연하는 학생 43명을 적발해서 선도위원회로 넘겨 다수의 학생을 정학시켰다. 태도가 불손한 학생들은 폭력적인 언어로 군기를 잡았다. 학교 폭력을 저지른 학생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생각으로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기강을 잡으려 했다. 공포와 폭력으로 질서를 잡은 것이었다. 녀석들은 어느 샌가 나를 '한 대장' 혹은 '한 탐정'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두려워하며 복종했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증오심을 읽을 수 있었다. 나도 역시 아이들을 향한 분노가 마음속에 상존해있었다. 힘으로 학생들을 억압하는 생활지도방식에서 약간의 후련함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마음이 무거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참했다. 그렇다. 너무나 비참했다. 나는 교사인가 아니면 강력계 형사인가? 나는 교사인가 아니면 교도소 교도관인가? 나는 교사인가 아니면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인가? 나는 무엇인가?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나의 지나친 열정(?)은 기어코 사고를 부르고 말았다. 수업시간에 지시에 불응하는 한 여학생에 대해서 분노를 참지 못해서 교탁을 주먹으로 내리쳤는데 예상(?)과는 달리 나의 손가락이 부러지고 말았다. 예전 교탁은 원목이라 부서지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특수 합판이라 강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몰랐다. 내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서 생각보다 더 세게 내리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만약 그 주먹으로 여자애를 때렸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주께서 그 순간에 나를 도와주신 것이다. 수술을 했다. 핀을 박아서 뼈를 고정하고 깁스를 하고 6주를 보냈다. 그 동안, 나는 비참함에 몸서리쳤다.

 

2012년 늦가을에 대구고등학교에서 좋은교사와 tcf가 함께 주최한 회복적 생활교육 워크숍에서 1박 2일에 걸쳐 "회복적 정의", "비폭력 대화", 그리고 "회복적 서클"강의를 듣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다. 일단 모의 역할극이긴 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경청하도록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졌다. 나도 학교폭력의 가해자 친구역할을 하면서 비록 연극이었지만 피해자의 말을 들으면서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과연 거친 학교현장에 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조정자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2013년 3월 첫 주는 쥐 죽은 듯한 분위기에서 무사히 잘 넘어갔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서로 낯설기에 탐색전을 벌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예상대로 3월 둘째 주부터 사고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남학생들이 프로레슬링 흉내를 내고 있었다. 한 아이를 벽으로 밀어내면 그 아이는 벽에 부딪쳤다가 튕겨져 나오는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벽에 떠밀렸다가 튕겨져 나오는 상황에서 다른 한 학생이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버렸다. 순간 둘러서서 구경하던 남학생들이 넘어진 학생을 발로 밟고 차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남학생 여학생 그 어느 누구도 말리려하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복도를 지나가다가 이 장면을 목격했고 호통을 치자 주변 학생들이 흩어졌다. 발로 밟은 학생이 누구인지 나도 미처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학생을 담임선생님에게 인계했다. 며칠 뒤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가해학생으로 의심되는 학생들을 3명 정도 찾아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의견을 물었다. "회복적 서클"을 사용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진행자로서 자신은 없었지만, 일단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쓰러진 학생, 3명의 의심학생, 담임선생님을 수학실로 모았다.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했다. 쓰러져서 밟힌 학생부터 기분이 어땠는지 물었다. 나는 피해자 학생의 말을 들은 대로 정확하게 확인하며 반복해주었다. 때때로 내가 들은 게 맞는지 피해 학생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원래는 가해 의심 학생들이 들은 것을 반복해 줘야하는데 나는 그 당시 진행과정을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들어서 어떤 경우는 3번씩이나 내가 거듭 반복해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해주기도 했다. 피해학생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자신도 함께 장난을 쳤다는 것을 인정하며 아울러 자신이 쓰러졌을 때 친구들이 발로 자신의 몸을 차는 것은 용서해 줄 수 있었지만 발로 머리를 차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고 그 학생이 누구인지 알면 죽여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은 반 아이들이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함께 장난을 친 것이고, 정말 친구라면 발로 자신의 머리를 차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많은 여학생들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부끄러워서 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모욕당한 피해자 학생의 마음을 최대한 정확하게 가해의심학생들에게 전달했다. 가해의심학생들은 처음에는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왜 자신들을 불렀는지 불만이 가득했으나,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대화를 통해 피해자의 심정을 공감하고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해졌다. 가해의심학생들은 피해학생이 쓰러지자 얼떨결에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는데 자신들이 머리를 차려고 한 것이 아니라 워낙 많은 학생이 몰려들어서 장난스럽게 발길질하다보니 의도하지 않게 머리를 차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피해학생과 동일한 상황에 처했다면 자신들도 가해자를 죽여 버리고 싶었을 것이고, 수치심에 학교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가해의심학생들의 말도 들은 대로 반복해주었다. 때로는 내가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기도 하면서 2번 3번 반복해주기도 했다. 가해의심학생들에 대한 미움이나 판단을 모두 내려놓고 들은 대로 반복해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가해학생들이 처음에 보였던 귀찮다는 표정은 온데 간데 없어졌고, 정말로 미안하고 친구와의 우정과 신뢰를 저버린 데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말과 표정에서 여실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하게 듣고 나자, 가해의심학생 그리고 피해 학생 모두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특히 피해학생은 가슴의 응어리진 것이 다 풀린 듯 한결 여유로워 졌고 표정도 밝아졌다. 이쯤에서 나는 2012년 "회복적 서클" 실습 때 배운 것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좋은 교사 4월호에 실린 박숙영 선생님의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글을 읽었던 것을 떠올리며 마지막 단계로 넘어갔다. 피해학생은 가해학생이 누구인지 찾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그들에 대한 처벌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자신이 가해의심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짓밟힌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반 학생들에게 소문을 내지 않도록 요청했다. 가해의심학생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다수의 가해학생들이 의도를 가지고 머리를 찬 것이 아니고, 넘어진 게 우스워서 우발적으로 몰려가서 몸을 차다보니 뜻하지 않게 머리를 차게 되었다는 것을 피해자가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친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지켜보기만 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절대로 소문을 내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학생들은 모두 표정이 밝아졌고 가벼운 미소도 번져 나왔다. 함께 참여한 담임선생님이 서약서를 작성했고 참가 학생들 모두의 사인을 받았고, 학생들에게 한 장씩 나눠주었다. 모임을 진행한 나도 뭔가 모를 뿌듯함이 몰려왔다. 담임선생님도 안심 하는 것 같았다. 모임을 마치고 나오면서 아이들의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관계의 회복이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행복했다. 그렇다 행복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어설픈 시도는 나름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도 피해학생과 가해의심학생 모두 약속을 잘 지키고 있고, 여전히 같이 장난을 치며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회복적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사건 이후에 나는 8건의 크고 작은 남학생들 간의 갈등과 다툼을 어설픈 "회복적 서클"로 풀어냈다. 나는 신이 났다. 1시간 30분 정도 상대방의 말을 잘 듣도록 중재해주기만 해도 꽁꽁 얼어붙은 갈등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아이들이 화가 나서 상담실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한결 편안해져서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생활지도의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평화의 중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더 배우고 경험을 쌓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여학생들 간의 따돌림문제는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피해학생을 만나서 써클 모임으로 초대했지만 내가 신뢰를 주지 못했는지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학교폭력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관계의 회복이나 응어리진 한이 풀리기보다는 서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는 것으로 끝이 났다. 피해학생도 자신의 억울함이나 응어리진 것에 대한 사과를 받지 못했고, 가해 학생들도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 자로서 죄책감을 지닌 채 야수같이 살아야 할 것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가해자가 전학을 간 것이 아니고, 피해자가 자신이 원치 않는 학교로 결국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중재자로서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나,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라도 힘이 닿는 데까지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다.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비참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행복해하며 미소 짓기를 바란다.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평화의 도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주님 부디 저를 의의 길로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한연욱

대구 tcf 소속, 대구 대진고 2학년 영어교사, 아내 이유진 초6 한수영 초5 한경주, 행복한 교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