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13
존중하기
사례1. 아이들은 존중을 해주면, 나중에 기어오른다.
‘3월에 아이들을 꽉 잡아야 한 해가 편하다.’, ‘아이들은 처음엔 잡고 천천히 풀어주어야 오히려 나중에 고마워할 줄 안다.’ 교직에서 통하던 나름 불문율.
그러나 올 첫 학기부터 아이들에게 ‘존중’을 몸소 실천하기로 한, 박○○선생님(초6담임). 첫 3월, 아이들은 지시하기보다, 자신들의 의견을 묻는 선생님의 태도가 새롭기도 하고 그런 선생님이 좋았다. 학교 짱인 여학생은 선생님이 의심스러웠는지 선생님을 시험해본다. 선생님의 의견이나 반 전체의 의견에 혼자 반대하거나, 톡톡 쏘는 말투로 대답한다. 하지만, 변함없이 존중의 태도로 대해주시는 선생님을 보고 조금씩 아이도 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4월, 5월은 다른 국면이 찾아왔다. 4월, 유독 박샘의 반 아이들은 자유롭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하다. 5월에 접어 들면서 남자 아이들 중에 의욕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남학생 절반 이상이 ‘공부를 포기했어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 영향인지 학급 분위기는 침체되고, 선생님한테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존중의 태도를 유지하던 박샘, 흔들리기 시작한다. 의욕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부를 포기했다는 말을 하는 남학생들에게 화가 나고, 자기의견만 주장하는 아이들로 인해 기운도 빠진다. 역시 ‘3월에 아이들을 꽉 잡아야 한다.’가 진리였나....
5월 말, 새로운 일이 발생했다. 옆 반의 일이기는 하지만, 117신고로 인해 학부모, 경찰이 학교에 찾아왔다. 아이들이 숨 죽이고 이 상황을 긴장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때, 박샘 그동안 배워왔던 회복적 서클로 어려운 국면을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6월, 박샘 주변에 아이들이 자꾸 모인다. 아이들이 먹을 것을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옆 반 학생 중에는 박샘 반으로 옮기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도 생겼다. 그리고, 박샘 반에서 ‘평화책 읽기’ 프로젝트가 1주일간 시작되었다.
‘존중’의 단어가 조금씩 육체가 되기 시작한다.
사례 2. 관계를 위해 솔직한 자기 표현 포기하기
새로 전학 온 그 여학생(중3)은 수업시간 내내 거울을 꺼내놓고 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그날도 그 여학생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수업을 중단하고 그 여학생 앞으로 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 거울이 그렇게 좋아! 예쁜 얼굴로 선생님 좀 봐 줄래?” 나는 재미와 위트어린 말투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는 아무 대꾸 하지 않았고, 여전히 거울을 본다. 그리고 나는 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아이는 나의 지시대로 거울을 바로 집어넣고 수업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아이는 나름 자제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손에는 거울이 떠나지를 않는다. 아이가 처음보다는 거울을 꺼내놓는 행동을 자제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찜찜하다. 사실 난 그때 화가 났고, 그 아이에게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야! 당장 거울 집어넣어! 여기가 학교지 너네 집이야!” 나도 매우 성깔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소리치는 모습이 원래의 나이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다가가다가 갑자기 교감 샘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는 혁신학교입니다. 아이들에게 절대로 혼내지 마시고, 친절하게 말하세요.” 순간적으로 나는 나의 태도를 바꾸고, 나름 재미있는 말투로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며 말한 것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아이와 관계를 깨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차라리 화를 참고 좋은 말로 말해보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내 솔직한 마음은 아니었다.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가? 그리고 그것이 교육적인 것인가? 그리고, 아이들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
존중이란 무엇인가?
“교육에 비법이 있다면, 그것은 학생 존중에 있다” - 미국의 수필가 랄프 왈도 에머슨.
‘아이들을 존중한다’, 또는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말이 선생님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선생님들마다 대답이 다르겠지만, 많은 경우에,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허락해준다.’와 닮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을 존중한다’는 것이 좋은 말이긴 한데, 위험해보이고 교육적인지도 의심스럽고, 어디까지 존중해주어야 하는지 고민스러워 진다.
존중이란 무엇인가?
회복적 생활교육는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지는 태도뿐 만 아니라, 존중의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서 존중은 상호존중이다. 그것은, 교사가 학생을 존중하고, 학생이 교사를 존중하고, 교사와 학생은 학교공동체‧학급공동체를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우리의 학교는 존중의 문화라기보다는 명령하고 순종하는 문화다. 주로 힘을 가진 사람이 명령하고, 힘을 갖지 않은 사람이 따르는 지배구조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존중하기 위해, 이전의 권위주의적은 태도를 내려놓고, 명령의 습관을 멈추고 학생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훌륭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러한 교사의 태도에서 ‘존중’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버릇없고 자기만 아는 아이들로 변해가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교사는 존중을 가르친 것 같은데, 아이들이 배운 것은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다. 왜 학생들은 교사와 다른 메시지를 듣는가.
개인의 자율성과 상호 의존성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교육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자신의 자율성과 다른 사람과의 상호 의존성을 동등하게 소중히 여기도록 배울 것이며,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체계를 만들어 가는 기술을 배울 것이다.” -마셜B. 로젠버그
존중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다음의 과정이 필요하다.
1. 자기 이해와 솔직한 자기 표현
: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과 이해가 있고, 그러한 자신에 대해 솔직한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다.
2.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
: 상대방에 대한 자각과 이해가 있고, 상대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3. 상호의존적 존재라는 인식
: 사람들은 본래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다. 자신의 소중함만큼이나 상대방도 소중하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는 자신이 진정으로 존중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4. 자신과 서로의 삶에 기여하겠다는 의도로 자신과 서로를 돌본다.
: 죄책감이나 수치심, 의무감, 책임감,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강제적 방식을 쓰지 않고 또한 외적인 보상이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 내적 동기에 의해 행동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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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아이들은 존중해주면, 나중에 기어오른다.
선생님의 존중하는 태도에 아이들은 자신들의 자율적 선택이 존중받는 경험을 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이전의 경험과는 달리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지 못했다. 선생님의 의견이나 학급공동체에 대한 존중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이때 선생님이 ‘존중’의 태도를 포기하고 다시 이전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돌아갔다면, 아이들은 크게 실망했을 것이고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가 무너졌을 것이다. 중간에 존중의 태도를 후퇴하고 권위적인 힘을 쓰는 것은 처음부터 권위주의적인 힘을 쓰는 것 보다 관계성에 더 해롭다.
다행히 박샘은 존중의 태도를 유지했고, 첨예한 갈등이 발생한 상황에서 누구도 비난하지 않으면서 평화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교사의 실천을 통해 ‘존중’이 점점 일상의 태도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사례2. 관계를 위해 솔직한 자기 표현 포기하기
수업시간에 거울을 보고 화장하는 여학생을 보고 매우 화가 났지만, 교사는 화를 억누르고 친절하게 말한다. 화를 내면 그 학생과 관계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계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솔직한 자기표현을 포기한 것이다.
아이와의 관계성을 위해 도움이 되는 시도였다. 하지만 더 도움이 되는 방식은, 교사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학생에게 솔직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안다. 즉, 그 여학생에게 선생님은 수업이 중요하게 여겨지기를 바란다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오히려 여학생을 돕는 일이다.
“내 수업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중요해서 지금 너무 화가 난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서로의 존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식이다.
마무리
존중은 상호존중의 실천 없이는 배울 수 없다.
교사가 아이들의 의견만 존중하고, 교사 자신에 대한 존중이나 공동체의 존중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존중을 배우기보다 책임의식 없는 자율성만을 배울 수 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존중을 가르치기 위해,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해야 한다.
교사 : 선생님은 수업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게 중요해. (중요하게 여겨짐)
학생 :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 혼자있고 싶어요. (혼자만의 시간, 자유로운 움직임)
교사 : 혼자있고 싶다는 말이구나.
학생 : 네.
교사 : 샘은 좋은 수업 분위기를 위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도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솔직한 자기표현과 존중의 과정을 통해, 학생을 통제하기보다는 협력을 이끌어 가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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