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호-14
첫 대화모임
김은영 인천 마전중학교
상황
‘부장님! 우리 반 여자 아이들 상담 부탁드려요.’ 메시지를 날린 분은 올해 새로 부임해 오신 3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다. 처음 부장을 하는 내게 ‘부장님’이라는 호칭은 어색함의 극치고, 그저 몇몇 아이들 이야기를 가끔 들어준 것 외에는 상담경험이 전무한 내게 ‘상담’을 해 달라는 그 선생님의 용기는 정말로 ‘나’를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경험’과 ‘담임 쉬기’의 두 가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그 자리를 맡았고, 그래도 양심이 있어 ‘회복적 생활교육’ 1년 과정을 이제 막 시작한 시기였으니 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담임교사에게 들은 그녀들의 상황은 이러했다.
담임교사의 관찰 및 개입과정 : 가순, 나순, 다순, 라순, 마순, 바순, 사순이 7명(이름은 가명)은 같은 반에서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친구들이다. 최근 사순이가 점심을 먹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고개 숙이고 공부만 한다. 아프다는 이유로 조퇴하는 사순이를 불러 이유를 들은 결과 6명이 사순이를 고립시킨다는 판단이 들었고, 6명을 불러 사순이에게 미안하다는 사과편지를 쓰게 한다. 종례시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왕따도 학교폭력이라는 말을 전체에게 전달한다. 상담실에서 한 번 더 6명을 데려다 상담을 하면 이 일이 여기서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상담을 요청한다. |
사전 대화모임
가순이의 이야기 3학년 들어와서 사순이를 알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불편함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점심 먹을 때 사순이가 ‘바보야’, ‘짜증나’를 반복하고, 체육시간 사순이로 인해 사순이 친구가 가순이 발을 밟았으나 아무 말 없이 가버린 점 등 때문에 말을 안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로 담임선생님이 사순이 편을 드는 것 같아 속상하다. 사실은 피해자인데 가해자 취급 받는 느낌이 싫다. 대화모임은 사순이가 원하면 하겠다.
사순이의 이야기 급식시간에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고 인정한다. 그 이후 사과하고 싶었는데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피하는 것 같아서 이야기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 친구들과 풀고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나는 대화하고 싶은데 그 친구들은 싫다고 할 것 같다.
*진행자의 깨달음. - 아, 교사 입장에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경우가 많겠구나.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가해자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교사의 선입견중의 하나일 수 있겠다. - 교사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빨리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오해가 더 커질 수도 있겠구나. - 갈등 당사자는 두 가지 마음을 갖고 있구나. 갈등이 지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해결방법을 알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면 그냥 두려움으로 피하게 된다는 것. |
본 대화모임1 : 가순이와 사순이
먼저 시간을 내 주고 참석해 준 것에 감사하고, 진행방법, 약속 등을 안내하고 시작했다.
진행자 : 체육시간에 사순이가 가순이 뒤에 숨으면서 사순이를 좇아온 친구가 가순이 발을 밟았는데 사순이가 말없이 가버렸다고 들었어. 이것 때문에 현재 어떤 마음인지 누가 이야기해 줄래?
가순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고 사순이가 반복했다. 사순이는 처음부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사순이 목소리가 너무 작아 가순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두세 번 반복되었지만 사순이가 다시 이야기하면서 가순이가 사순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가순이는 그 동안의 여러 이야기(체육시간, 급식, 진학문제 대화 시 끼어들기 등)를 꺼냈고, 사순이는 그때마다 자신의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이기적인 생활습관 등을 이야기하며 자신도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싶다고 했다. 한 번도 진정한 우정을 쌓아보지 못했고 친구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배우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도 했다. 자신에게 기회를 준다면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생활습관이나 언어 습관을 고치도록 노력하고 싶다고도 했다. 또 사순이는 자살도 생각하고 있었으나 친구들 때문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때 가순이는 엄마도 네 힘든 마음을 아냐고 사순이에게 물었고 엄마에게도 네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가순이는 마지막으로 담임선생님과 한 상담 이야기를 꺼냈다. 사순이가 조퇴하고 없는 사이 담임선생님이 6명과 이야기하고 사과편지까지 쓰게 하면서 비밀로 하자고 하고서는 당신이 종례시간에 학교폭력에 관한 안타까움을 가순이를 보면서 표현해서 당황했고, 가해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억울했다고 말하며 울었다. 사순이는 그런 줄 몰랐다고 너희들 잘못이 아니고, 내가 상처를 준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가순이도 자신들이 그 때 사순이에게 직접 이야기하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외면하다가 이렇게까지 되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몇 가지 약속을 정하고, 가순이가 나머지 5명의 친구들, 담임선생님과의 대화모임도 제안했다.
*진행자의 깨달음. -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면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하는구나. 그리고 생각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더 잘 설명하는구나. - 듣기가 되니까 순식간에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는구나. |
본 대화모임2 : 사순이와 가순이외 5명
가순이 제안에 따라 나머지 5명의 친구들을 만나 생각을 물었고 모두 대화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사순이도 친구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6명의 친구들이 모두 있는 것을 확인하자 당황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혹 원하지 않으면 각각 만나자고 제안하자 괜찮다며 자리에 앉았다. 일단 사순이를 모두 볼 수 있도록 자리를 조금 조정한 후 진행방식, 약속 등을 설명하고 시작했다.
아이들이 쓴 편지를 먼저 사순이에게 주고 읽어보게 했다. 사순이는 다 읽은 후 편지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순이, 다순이, 라순이, 마순이 순서로 그때 당시 마음과 상황, 자신의 성격 등을 설명함과 더불어 사과의 말을 전했다. 아이들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반복해 주었다. 나순이, 다순이와의 관계는 금방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라순이 차례가 되자 라순이는 눈물부터 쏟기 시작했다. 1~2년간 학원 친구로 만나면서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고, 그 때문에 라순이가 중간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이었다. 라순이가 울자 사순이도 울기 시작했고, 라순이에게만 의지하면서 부담 준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하자 라순이도 울면서 이해하고 사과를 받아주었다. 마순이는 자신의 편지를 확인한 후 특히 자신을 싫어하는 듯한 언행을 한 것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며 이유를 듣고 싶어했다. 사순이는 마순이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점점 멀어지는 것 같고, ‘나는 마순이 친구가 될 수 없나’ 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과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다고 사과했다. 마순이는 조용히 들으며 천천히 이해하고 수용했다. 그 사이에 바순이가 울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모두 울고 있었다. 사순이가 혼자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도 모른 척하고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바순이가 말하자 우는 소리가 더 커졌다. 잠깐 그대로 울게 두었다. 진정하고 난 후 사과를 동의한 약속을 적고 사인 후 복사해서 나누어 주었다.
*진행자의 깨달음. -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면 화해가 시작되는구나. - 아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알고 있구나. - 말이나 행동에 의문이 남으면 그것이 오해로 변화기도 하는구나. 숨겨진 이유를 묻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
본 대화모임3 : 가순이와 담임선생님
먼저 있었던 대화모임 참석자 7명의 관계를 잠깐 확인하고 진행방식 소개했다. 호칭은 합의에 따라 ‘선생님’, ‘가순님’으로 정했다.
가순이가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 할 줄 알았으나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먼저 듣기를 원했다. 담임선생님이 먼저 종례시간 문제(학교폭력에 대한 언급을 하시며 가순이를 보심)에 대한 의도를 이야기하며 혹 상처를 받았다면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하셨다. 선생님 이야기가 시작되자마다 가순이는 울기 시작했다. 한참 울고 난 후 선생님 이야기를 반복해 주었다.
그 후 체육시간의 상담내용(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오해받은 것)으로 상처받은 부분을 가순이가 이야기했고 선생님이 반복해주었다. 선생님이 지혜롭게 행동하지 못했다고 사과하신 후 담임으로서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하셨다. 가순이가 반복하고, 그 후 가순이도 선생님의 마음을 오해하고 자신들 생각만 한 것 같다며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 이후는 진행자 없이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갔다. 그래서 진행자는 지켜만 보았다.
*진행자의 깨달음. - 선생님의 진심어린 사과가 학생의 마음을 녹이는구나. |
그 이후
첫 대화 모임으로 참 버거운 사건이었다. 여학생들의 왕따 문제, 담임선생님과의 오해가 섞여 본대화모임만 세 번을 해야 했다. 일주일 동안 에너지와 시간을 쏟으면서도 혹 내 말이나 서로간의 말로 인해 더 큰 오해가 쌓이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가순이와 사순이의 진실어린 대화과정은 나를 놀라게 했고, 그 이후 담임선생님과의 대화에서는 나도 기쁨으로 울었다. 이 첫 경험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걱정하지 마라. 너가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갈등을 평화로 만들어 가는 힘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후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여러 친구들, 부모님들을 만났고 그들이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기쁨으로 지켜보고 있다. 아직 어마어마한 사건을 만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생각한다. 대화를 위해 서클로 앉는 그 순간부터 이미 평화는 만들어지기 시작한다고. 물론 또 다른 수없는 갈등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경청과 이해를 통해 갈등을 풀어가는 길을 걸었던 녀석들은 다시 그 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김은영 인천 마전중학교에서 국어 교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16년차 교사. 평화의 참맛을 알고 싶어 올해 ‘회복적 생활교육’ 1년 과정을 걷고 있다. eund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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