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학교에서 샬롬무브먼트(ShalomMovement·평화운동)를 한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운동 단체 ‘좋은교사운동’(goodteacher.org) 소속 교사들이 몇 해 전부터 ‘회복적 생활교육’이란 이름으로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이란 갈등을 대화로 평화롭게 풀어가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통해 해결하고, 규칙을 ‘응징’이 아니라 ‘공감’의 수단으로 만들어간다. 스승의 날을 앞둔 12일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들을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이 운동을 다른 말로 아이들 안에 있는 ‘빛’을 끌어내는 ‘샬롬운동’이라고 했다.
‘회복생활부장’ 안 선생님의 눈물
인천 신흥중 안보경(53) 교사를 만나기 위해 학교 본관 1층 학생상담실 ‘위클래스’의 문을 여는 순간, 교복 입은 남학생 두 명이 튀어나왔다. 둘은 문을 나서자마자 웃더니 금세 어깨동무를 하고 뛰다시피 걸어갔다. 키 차이가 20㎝ 넘게 나 보였다. 안 교사와의 직전 통화에서 “오늘 심각한 학교폭력 사례를 상담한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는 이 학교 회복생활부장이다.
다른 학교에선 대개 학생부장이라고 한다. 상담실에 들어가 “상담 받은 학생들이 어깨동무하고 가더라”고 전했다.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안 교사가 “아, 그랬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회복적 생활교육에서는 상담을 ‘회복적 대화모임(RC·Restorative Circles)’이라고 한다. RC의 목표는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다.
1987년 도덕 교사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안 교사는 김태용 교장의 제안에 따라 2013년 신흥중에서 처음 RC를 시도했다. “처음엔 애들이 체벌하지 않고, 벌점 주지 않는다고 하니까 ‘앗싸,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곳이구나’라고 착각했죠. 학부모님들도 ‘우리 애가 피해 입었으면 가해한 아이 징계부터 해야지’라며 항의하셨죠. 첫 해엔 울면서 기도한 날이 많았어요.”
RC란 중재자가 갈등의 원인과 동기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도록 돕는 모임이다. RC가 잦아지면서 학생 교사 학부모 간 이해의 폭이 차츰 넓어졌다. 지난해 입학생 중 초등학교 시절 ‘전따’(전교생에게 따돌림 받는 아이)인 A군(14)이 있었다. “RC를 통해 A는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친구들은 A가 자제하길 바라는 행동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죠.”
여름방학 전까지 약 넉 달 동안 RC가 진행됐다. 이제 친구들과 잘 지내게 된 A군은 올해 신입생들에게 RC를 ‘홍보’하는 선배가 됐다. 그는 공개편지에서 ‘힘든 아이들아. 안녕! 나는 중1 때 학교폭력으로 힘들었어. 어머니는 내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셨어. 그리고 회복적 대화모임을 하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됐어. 나에겐 친구들, 선생님, 가족이 있었어.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야.’
안 교사는 “학급 친구들, 담임선생님, 상담교사가 모두 RC를 통해 협력했습니다. 피해자가 존중과 공감을 받았어요. 공동체의 지지 속에 피해자 내면에 힘이 생겼고 갈등이 해결됐죠. 아이들의 회복 탄력성은 놀라워요”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안 교사는 폭행 따돌림 사제관계 등 41건의 교내 갈등에 대해 RC를 진행했다. 학생과 교사 103명이 참여했다. 재발한 갈등은 ‘0건’이었다.
‘카리스마’ 박 선생님의 기린 마을
안보경 교사의 사례가 학교 단위라면 경기도 안양 관악초 박은지 교사는 학급 사례다. 박 교사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하기 전 주로 5, 6학년을 맡았다. 별명이 ‘카리스마’였다. “고학년을 주로 가르치다보니 도전적인 애들을 제압하기 위해 강하게 말하고 권위적으로 대했어요. ‘나한테 까불다 머리통 깨지는 수 있다’ ‘2초 안에 저리 꺼져’ 남자애들이 여자인 절 축구감독으로 청할 만큼 거칠었죠.”
그는 2012년 ‘좋은교사운동’에서 회복적 생활교육 지도법을 배웠을 때 괴로웠다. “‘존중과 경청’을 제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같은 해 도교육청 연수자로 선발돼 덴마크에서 3개월간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덴마크 교수들은 연수받는 교사에게 ‘뭘 공부하고 싶냐’고 늘 묻고, 자유를 허락하고…. 그들이 학습자를 존중하는 모습에 놀랐어요. ‘아, 이게 존중이구나’ 생각했죠.”
2013년부터 담임을 맡은 6학년을 대상으로 ‘존중’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학생들에게 ‘비폭력 대화’의 상징인 기린을 소개했다. 목이 길어 전체를 조망하고, 심장이 커 마음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애들이 떠들면 오른손 검지를 입에 대고 ‘쉿, 쉿’ 하면서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죠. 애들이 복도에서 뛰면 ‘뛰지 마’ 대신 ‘천천히 걸어줄래?’라고 부탁하고요.”
아이들이 자기감정을 쉽게 노출했고 부작용도 나타났다. “자기가 원하는 게 즉시 안 이뤄지니까 한 여자애가 저한테 ‘쌍X’이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순간 제 옛 모습이 튀어나오려고 했는데 참았어요. 되물으니까 저한테 한 게 아니라고 했고요. 그냥 넘어갔어요.” 그는 자신을 회복적 생활교육의 제일 큰 수혜자라고 여겼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법을 배우면서 제가 저를 존중할 줄 알게 됐어요. 그 전엔 교사로서 권위와 통제 방식에 제가 맞게 행동하는지 자기검열을 했다면 이젠 저와 아이들의 마음·관계에 초점을 맞춰요. 제가 자유로워진 거죠.” 박 교사 반의 급훈은 ‘존중과 자유’가 핵심이다. 2013년 반 학생부터 올해까지 각각 ‘기린마을’ 1, 2, 3기를 배출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1기 아이들이 2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왔고요. 2기 아이들은 졸업하면서 올해 3기가 된 후배들에게 노란 초를 선물로 주고 갔어요. 호호. 많이 자랐죠? 저는 교사가 ‘기다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하나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안에 이미 빛이 있어요. 그 빛이 밖으로 나오도록 기다리는 것이 교사의 일인 것 같아요.”
‘패스’가 있는 허 선생님 과학 수업
경기도 광명 충현중 허성연(45) 교사는 2013년부터 담당 교과인 ‘과학’ 시간에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규칙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만든다. “학기 초 각자 반에서 아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과학 수업의 가치를 제시하고 각자 스티커를 붙여 다수가 동의하는 것을 중심으로 규칙을 정해요.”
올해 공통적으로 만들어진 규칙은 ‘발표할 때 준비 안 된 사람은 패스(Pass)할 수 있다’였다. “수업할 때 모두 동그랗게 앉아요. ‘화석’ ‘지구’ 등을 공부한 뒤 발표 준비 안 된 아이가 있잖아요. 그럼 이 친구가 자기 순서를 ‘패스’ 즉 지나가도록 하고 준비가 되면 하도록 배려하는 거예요. 모두 다 수업에 참여할 수 있고, 기다리는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아이들을 하나로 연결시켜줘요.”
허 교사는 이 ‘연결’을 회복적 생활교육의 핵심이라고 봤다. “우리 시대의 고통은 ‘단절’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학교나 회사, 사회에서 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길옆 작은 풀, 동네 개, 옆자리 친구…. 모두 연결돼 있는 것들인데 우린 그걸 의식하지 않는 교육을 해요. 과학은 이 연결을 공부하는 과목이기도 해요.” 그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교육의 ‘거름’으로 바꾸자고 했다.
그는 갈등이 생기면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객관적 중재자가 되려고 애쓴다. “올해 학기 초 과학 수업 중 B가 C의 장난에 격분, 손으로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차는 일이 있었어요. 둘과 RC를 했죠. 이건 아이들이 마지막에 쓴 동의서예요.” 허 교사가 내민 동의서에는 ‘장난을 칠 수 있으나 선을 넘지 않는다. 행동하기 전 생각해본다’ 등이 적혀 있었다.
“착한 아이들의 교실? 갈등이 없는 사회? 그런 게 있을까요. 똥이 모이면 거름이 되잖아요. 갈등의 원인을 살펴보고 서로의 욕구를 이해하면 갈등이 풀려요. 우리 삶의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려고 하면 공동체는 발전하는 거죠. 지난해 세월호 참사도 우리의 대처에 따라 공동체 회복에 기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지난달 과학 시간 중 세월호 추념 수업을 진행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평화와 화해의 ‘씨앗’이다. 교사들은 이 씨가 언제 자라 학교를 덮고, 학교 울타리 밖으로 넘어갈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오늘도 이 씨를 뿌린다.
인천·광명=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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